나는 로봇입니다.

『나는 화성탐사로봇 오퍼튜니티입니다.』

20200430_203449-1.jpg 『나는 화성탐사로봇 오퍼튜니티입니다.』 글 이현, 그림 최경식, 만만한책방, 2019


우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주는 지구에 두 발 붙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나와는 동떨어진 곳이라 여겼습니다. 상상력이 별로 없는 아이였지요. 만화책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만화책이 강경옥의 『별빛 속에』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아, 이럴 수도 있나? 저런 세계도 있겠구나.’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읽었으니 아름아름한 사랑 이야기가 설레고 좋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전히 우주에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가 상상할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기하게 비슷한 류의 책을 계속 만나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미래사회, 우주, 로봇 이런 이야기들을 여느 해보다 굉장히 자주 만난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날 가운데, 이 책을 만났습니다. 동화작가 이현이 쓴 첫 번째 그림책입니다. 사람의 인연이 신기한게 그 해 이현 작가와의 만남도 열게 되었습니다. 이현 작가는 2010년에 동화 『로봇의 별』을 썼습니다. 작가의 말에 바로 이 오퍼튜니티에 대해 언급했는데요, 9년이 지난 후 오퍼튜니티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게 될 줄 그는 알았을까요?


작가와의 만남 때 이현 작가는 최경식 그림 작가의 이야기도 전합니다. 최경식 그림 작가의 첫째 아이가 어렸을 때 한 지인이 나사(NASA)에서 나온 오퍼튜니티 모형 로봇을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아이보다 자신이 그것을 더 잘 가지고 놀았다고 하는데요. 2019년 그도 또한 오퍼튜니티 이야기에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두 작가는 '이것은 운명'이라고 여기진 않았을까요?



책은 거의 정사각형으로 큰 판형이라 페이지도 넓직넓직합니다. 이렇게 큰 페이지가 흑백 연필로 그려진 그림으로 가득 찼는데요, 작가는 그림을 모두 샤프펜슬로 그렸다고 합니다. 양쪽으로 펼친 페이지까지 있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요? 가히 그 노고가 존경스럽습니다.


KakaoTalk_20200602_113646682.jpg 위의 책 한 페이지 펼친 면, 최경식 그림


그렇게 회색과 갈색톤으로, 생명이 없는 듯 보이는 화성의 광활한 땅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그곳에 인간이 화성을 연구하기 위해 쏘아올린 로봇 오퍼튜니티가 있습니다.


오.퍼.튜.니.티.

오퍼튜니티는 1초에 5센티미터씩 움직입니다. 1초에 5센티미터! 정말 느리게 움직이는 로봇입니다. 오퍼튜니티는 태양열로 작동합니다. 태양이 지면 전지판을 접고 움직임을 멈춥니다. 태양이 뜨면 다시 활동을 재개합니다. 지구와 끊임없이 교신하며 화성의 모습을 지구에 전송합니다. 물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하고 모래 폭풍을 만나기도 하지요. 움푹 패인 구멍에 바퀴가 빠지면 헛도는 바퀴에 속수무책 멈춰 있기도 합니다. 지구에 있는 과학자들이 같은 모형으로 수없이 실험을 반복한 뒤 빠져 나오는 방법을 알려주면 그대로 따라 해 빠져나오기도 합니다.


오퍼튜니티는 90솔, 지구의 시간으로 90여 일 정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진 로봇입니다. 그런데 오퍼튜니티는 16년을 살았습니다. 2019년에야 작동을 멈췄지요. 지구의 과학자들은 오퍼튜니티를 깨우기 위해 하루 3번 모두 1000번의 교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오퍼튜니티는 결국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오퍼튜니티는 영원히 작동을 멈춘 채 지금도 화성에 홀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요?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위의 책 표지 뒷면 그림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깁니다. 글과 그림의 속도는 화성을 탐사하는 오퍼튜니티의 속도를 닮았습니다. 묵묵히 천천히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흡사 오퍼튜니티를 설명하는 과학 지식 그림책 같기도 합니다. 지식책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보가 정확합니다. 그런데 신기합니다. 밋밋하고 특별할 것 없는 그림과 글인 것 같은데, 차근차근 그냥 이야기에 집중했을 뿐인데,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니 눈물이 핑 돕니다. 눈물이라니. 우주, 로봇 이런 것에 관심이 1도 없던 내가 로봇 이야기에 눈물이라니요.


로봇은 인간이 만든 기계일 뿐입니다. 아무리 감정을 데이터로 입력해도 인간이 느끼는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는 없을 겁니다. 이현 작가는 『로봇의 별』 작가의 말에서 '오퍼튜니티는 자신이 혼자라는 것은 알지만 외로움은 느끼지 않는다고 과학자들이 말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물론 로봇이니 당연히 그렇겠지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그것을 어떻게 알까요? 나는 오퍼튜니티가 아닌데요.


과학, 문학 이분법으로 나눌 필요는 없겠지만 과학자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억측으로 들릴 수 있고 문학가, 예술가에게는 충분히 가능한 상상일 수 있을 겁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는 관점의 차이가 대상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합니다. 온도차를 만듭니다. 작동하는 기계에게 ‘살다’라는 단어 가당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 그림책으로 처음 만난 로봇 오퍼튜니티는 한 명의 인간처럼 다가왔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막막하고 얼마나 두려울까. 그곳에 홀로 있을, 작고 느린 오퍼튜니티에 마음이 가 닿습니다.


우주에 가보고 싶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화성에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이제는 살기를 멈추고 그 곳에 혼자 있을, 인간이 만든 기계인 로봇 '그' 오퍼튜니티를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이 하나의 그림


6개의 바퀴로 당당히 서 있는 오퍼튜니티의 모습이 수면에 비친다.

뒤에 있는 낮은 산 혹은 구릉도 물에 비친다.

비친 상이니 거꾸로 있는 모습이다.

너는 누구니?

나? 나는 너야.


오퍼튜니티는 쌍둥이 로봇 스피릿이 있다.

스피릿은 화성 반대편에 있다.

둘은 절대로 만날 수 없다.

화성에는 물의 흔적이 있다.

오퍼튜니티는 끊임없이 그 흔적을 찾아 헤맨다.

물에 비친 오퍼튜니티의 모습

반대편에 있는 스피릿이다.


그림 작가의 상상과 손으로

화성의 물과

그 물에 비친 모습으로 스피릿이 되살아났다.

그림 작가도 오퍼튜니티의 외로움을 달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이 그림이 참으로 감사하다.


위의 책 한 페이지, 최경식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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