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구조 바람』

구조바람.jpg 글 로이 미키, 그림 줄리 플렛| 길상효 옮김| 씨드북| 2018


세월호 유가족 분들과 만남의 자리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은유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고 난 후였습니다. 갑작스럽게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감히 추측하거나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슬픔과 고통이 어느 정도일지.


그들은 한결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떠난 자식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 없고, 자식 보내놓고 웃을 수도 마냥 울 수도 없다고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극도의 고통을 맞이한 사람 옆에 서 있는 사람도 어떻게 그들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건네야 할지 막막합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슬픔을 제대로 나누는 방법, 마음이 아픈 사람을 위로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줍지 않은 말도 다 부질없는 것 같고,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어떤 표정으로 시선을 던져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웃어도 될지, 울어야 할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지 안절부절 합니다. 그래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이제 그만하라는 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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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을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라고. 정말 슬픔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하나 봅니다. 슬픔을 통해서 배우기도 해야 하나 봅니다.


이 그림책을 보자마자 단번에 그 날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2009년 캐나다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책이라는데, 참 많이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KakaoTalk_20200612_084552408_04.jpg 위의 책 한 페이지, 줄리 플렛 그림


폭풍으로 얼어붙은 앞바다에 돌고래 세 마리가 갇혔습니다. 나가려고 해도 길이 없고, 눈은 계속 내리고 얼음은 점점 더 넓어집니다. 하지만 관에서는 얼음 깨는 배도 없고 자연의 섭리이니 그냥 가만히 두라 합니다. 날카로운 비명 소리, 애타는 울음소리를 듣고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요? 그냥 두면 죽을 것이 너무도 뻔한 데 말입니다.


아이들은 그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움직입니다. 그리고 돌고래들을 구해 냅니다. ‘구조 신호는 응답하라고 있는 거잖아’ 라는 아이의 말이 마음을 울립니다. 아이들도 아는데 말이지요. 왜 우리는, 그렇게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던 걸까요? 어떻게 하면 그 소리를 외면할 수 있는 걸까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은 거짓말인 모양입니다. 약하고 빽 없고 돈 없는 사람의 목숨은 소중한 생명이 아닌 가 봅니다. 어리고 여리고 약한 존재는 가장 쉽게 착취당하고 억압당하고 피해를 봅니다. 이 사회가 그런 것 같아,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사회가 아닌 것 같아 화가 납니다.


여기저기서 구조 요청 소리가 들리는데, 모두들 잘 안 들리나 봅니다. ‘내 일 아니니까’라며 들어도 못들은 척 하나 봅니다. 내 일이 되어서야 돌아보게 된 것을 후회하며 이제는 좀 들으라고 목청을 높이는 목소리들까지 성가시게만 느껴지나 봅니다.


KakaoTalk_20200612_084552408.jpg 위의 책 한 페이지, 줄리 플렛 그림


아이들이 건강하고 올바르게 커 갈 수 있도록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하는 이 땅의 어른들이 이 그림책을 한 번 보면 좋겠습니다. 하물며 아이들도 그런데 어른인 우리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부끄러운 마음 하나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잘못을 한 누군가는 고개 숙여 사죄하고 또 사죄하면 좋겠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 간 아이들에게,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당신도, 나도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구조 요청 소리에 이제는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움직여야 할 때라고 말입니다.


KakaoTalk_20200612_084552408_01.jpg 위의 책 한 페이지, 줄리 플렛 그림


도식적인 패턴, 도형, 무채색 톤으로 그려진 그림이 좋습니다. 해도 종이로 잘라 붙인 것처럼 평면적입니다. 혹독한 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생명을 살리기 위한 뜨거운 열기가 붉은 방수복을 입은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글, 그림, 옮김도 붉은 글자로 표현되었네요. 채도가 낮은 검정색, 푸른색, 회색, 크림색 등이 단단하고 건조한 얼음, 겨울의 느낌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합니다. 감정을 배제하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KakaoTalk_20200612_084552408_02.jpg 위의 책 한 페이지, 줄리 플렛 그림


그래서 볼드체로 쓰인 글자들이 더 단단히 가슴에 와 박힙니다.


‘구조 바람! 구조 바람! 구조 바람!’

‘늦지 않았어야 할 텐데’

‘포기하지 마’


우리는 늦었고,

포기했고,

구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미안해야 합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는 늦지 않게 뭐든지 해야 합니다.



이 하나의 그림


세월호 영상을 보았다.

세월호 관련 책을 읽었다.

4월만 되면,

아니, 4월이 되어야만.


아이들을 구하러

아니 아이들을 데리러 내려간 잠수부들의 인터뷰를 봤다.

이미 죽은 아이들의 몸을 꽉 껴안고 올라올 때

그렇게 눈물이 났다고 했다.


돌고래와 마주한 소년의 모습에서

산채로 마주하지 못해서 미안한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 본다.

살아서 다행이야.

살아줘서 고마워.


그 말 속에 이 말이 울린다.

아이들아, 그렇게 보내서 정말

미.안.해.


KakaoTalk_20200612_084552408_03.jpg 위의 책 한 페이지, 줄리 플렛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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