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앙!』 글 그림 조원희| 시공주니어| 2018
책은 페이지가 있습니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여러 인물을 만나고 이야기가 만들어지지요. 자연스럽게 따라가다 보면 반감, 화, 기쁨, 동의 등 여러 감정이 마음속에 생겨납니다. 때로는 눈물이 나고 때로는 고개를 주억거리게 됩니다.
저에게는 『82년생 김지영』이 그랬습니다. 책도, 영화도 모두 그랬습니다. 처음부터 그냥 따라가며 읽었습니다. 글이 문학적으로 아름답다거나 이야기가 새로워서 흥미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서 읽는데 부분 부분에서 ‘어! 이건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여성, 남성의 성 구분을 떠나서, 그냥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할 때 부당하고 불합리하고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여성’의 억울함이 아니라 한 ‘개인’의 절망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의문을 품고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콰앙!』도 그런 그림책입니다. 책은 깨달음이나 교훈을 주기 위해 이야기를 애써 엮지 않습니다. 그냥 두 개의 상황을 나란히 보여줍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카메라로 그저 비춰주고 있을 뿐입니다.
‘콰앙’ 소리가 납니다. 달려가 보니 한 아이가 차에 치였습니다. 구급차가 달려오고 경찰차도 옵니다. 다급하고 분주하게 사람들은 움직이고 아이는 다행히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갑니다. 모두들 아이가 많이 안 다쳐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던 길을 가지요.
‘콰앙’ 다시 소리가 납니다. 달려가 보니 새끼 고양이가 차에 치였습니다. 아까처럼 다급하게 달려오던 사람들은 고양이인걸 확인하자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몸을 돌려 가던 길을 그냥 갑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 아이, 엄마에게 묻습니다. “구급차는 언제 와요?”
위의 책 한 페이지, 조원희 그림
위의 책 한 페이지, 조원희 그림
두 개의 상황이 대구를 이루며 반복됩니다. ‘콰앙!’이라는 단어로 두 사건은 똑같이 시작되지요. 거리에 쓰러져 있는 아이와 새끼 고양이를 둘러싸고 있는 행인들 그림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벌어지는 결과는 다르지요. 한 생명은 병원에 갔고, 한 생명은 계속 거리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다시 자동차에 밟힐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새끼 고양이를 외면하고 등을 돌리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복잡한 감정이 읽혀지는 듯도 합니다. 아이의 질문을 받은 엄마는 과연 뭐라고 답을 했을까요? 거기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고양이를 안전한 장소로 옮기고 119를 불러 고양이를 돌봐 주었을까? 대답에 자신이 없습니다.
이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은 모두 분개합니다. “왜 고양이는 저렇게 그냥 두는 거예요?” 나도 아이들의 마음과 같습니다. 이건 분명 이상한 상황입니다. 왜? 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요. 그런데 어른인 나는 여러 상황이 오버랩 되며 뭔가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과연 모든 생명은 정말 똑같이 소중하고 귀한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판형이 작은 책입니다. 색 사용도 극히 적습니다. 어른들의 얼굴에 푸른빛이 드리워져 있는데 어둡고 음침하게 느껴집니다. 어른은 왜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는 걸까요?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저 생명도 똑같은 생명입니다. 당연히 구해야 하는 생명이지요. 나의 반려동물이 아니라도 누군가의 새끼이고, 차에 치여 어느 날 갑자기 아무렇게나 생을 다해도 되는 생명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책장을 덮어도 마음은 오래도록 심란합니다. ‘왜?’ 라는 질문이 끈질기게 떠오릅니다.
위의 책 뒷표지
이 하나의 그림
눈동자가 보이지 않네
아무 표정도 없고
누구는 조금 눈치를 보고 있는 것도 같지.
잠깐 망설이고 있는 듯 보이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모두 종이로 만들어진 인형 같아.
푸르게 칠해진 사람들
이들은 곧바로 등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가버릴 거야.
당신들도
바로 나도
여기 이 사람들 중 한 명일 수도
위의 책 한 페이지, 조원희 그림
오늘은 5.18이다.
상황과 이유가 없는 일들은 없다.
그러니 일은 벌어진다.
하지만
해서는 안되는 일들,
벌어져서는 안되는 일들,
잊어서는 안되는 일들이 있다.
그러니 남은 우리는 기억하고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왜?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