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약속』
예전에는 ‘일러스트레이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회화’해도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지요. 일러스트레이션은 디자인이나 만화 같은, 회화하면 반 고흐의 붓질이나 두꺼운 유화그림이 더 자주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런 구분은 전공을 할 때나 필요한 일이지, 그림을 즐기는 감상자가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이런 구분 없이 그림책의 그림을 그저 그림으로 만났는데 <엄마의 약속>을 보는데 오랜만에 ‘회화’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둡고 진하고 무거우면서도 진지한 ‘그림’이 좋았습니다.
<엄마의 약속>의 그림은 글의 내용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한 페이지에 그림, 한 페이지에 글. 전통적인 그림책 구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이 그냥 삽화 수준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 궁금해집니다.
엄마는 시카고로 돈을 벌러 떠났습니다. ‘시카고 남자들이 모두 전쟁을 떠나’ ‘흑인 여자들에게도 일자리를 주다니’ ‘상상해 봐, 에이더 루스. 흑인 여자가 철도 일을 하다니!’ 라고 하는 거 보니 흑인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 여겨야 하는 상황, 시대인 것 같습니다. 루스는 할머니와 집에 남습니다. 이제 엄마를 기다리는 일이 루스의 일상이 됩니다.
루스는 여러 감각으로 엄마를 기억합니다. 고양이털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으로 엄마의 손을 떠올립니다. 무릎 덮는 조각 이불만큼 따뜻했던 엄마의 손 그리고 손 냄새. 어떤 날은 설탕 냄새가 났고 어떤 날은 햇볕 냄새가, 어떤 날은 빨랫비누 냄새가 났던 엄마의 손이 그립습니다.
엄마와 루스가 나누는 말은 다정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둘이 서로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잘 드러나지요.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비보다 더 사랑해’ ‘눈보다 더 사랑해’ 엄마와 루스가 골백번도 더 주고받은 말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추억하며 루스는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들을 견딥니다.
전쟁의 시기는 모두가 춥고 어렵습니다. 루스와 할머니도 변변한 끼니 없이 아침저녁을 옥수수 빵과 요구르트, 비스킷으로 때우기 일쑤입니다. 어느 날 루스에게 온 고양이, 할머니는 고양이를 거두지 말라고 합니다. 고양이까지 거둘 만큼 식량이 넉넉하지도 않을뿐더러 행여 손녀에게 벼룩이 옮을까봐 걱정도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결국 고양이를 받아들이고 고양이를 위해 깔개도 떠 줍니다. 무심한 듯 생명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이렇게 엄마와 딸, 손녀와 할머니, 고양이까지 서로를 대하는 사랑의 온기가 집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글만 있었다면 그런 온기가 얼마나 잘 전달되었을까 싶습니다. <엄마의 약속>의 그림들은 집과 그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기운과 감정을 참 잘 전달해 줍니다. 손녀를 돌보며 딸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주름진, 근심어린 얼굴, 엄마를 기다리면서도 씩씩하게 편지도 쓰고 웃기도 하는 루스의 모습, 할머니에게 뾰로통하게 화를 내는 루스의 마음이 그림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열린 문으로 보이는 눈 덮인 바깥 풍경, 땔감을 들고 그 길을 들어서는 할머니의 실루엣, 눈과 추위로 꽁꽁 얼어버린 창문, 난로 앞에서 뜨개질을 하는 할머니, 그 옆에 앉아 있는 루스의,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 등도 그렇습니다.
다리를 모으고 누워 고양이를 어루만지며 가만히 누워 있는 루스의 모습은 두 페이지 전면에 그려져 있습니다. 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의자의 그림자는 점점 길어집니다. 벽난로에는 따뜻한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고요하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 그림을 보고 있는데 엄마를 기다리는 루스의 시간이 느껴집니다.
작은 탁자와 팔걸이의자 하나, 벽난로, 조그만 카펫, 난로 위의 주전자, 노란 갓 전등, 바람 넣는 펌프 등 적은 가구와 기물들이지만 딱 있을 것만 있는 정갈하고 소박한 실내입니다. 선명한 윤곽선으로 그려지진 않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울려 집의 분위기를 전해줍니다.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Vermeer)가 그린 실내 풍경이 떠오릅니다. 고요하고 정지되어 있는 것 같은, 하지만 이 그림 속 실내는 온기가 느껴집니다. 희미하지만 따뜻한 차, 나무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집 안팎을 배경으로, 땔감을 마련하고 고기 스튜를 끓이기 위해 주머니쥐나 토끼를 잡으러 가고 뜨개질로 필요한 담요를 뜨는 등 부지런히 조금씩 움직이는 일상의 노동 또한 엿보입니다. 떠난 엄마의 이야기보다 남아 있는 사람들과 집의 이야기가 그림으로 보여 집니다. 집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유지하고 가꾸어야 할까? 집은 어떤 곳이 되어야 할까?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합니다.
마지막 장면, 집으로 향하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드디어 엄마가 돌아왔습니다. 루스는 얼마나 기쁠까요. 할머니는 기쁨과 더불어 또 얼마나 안도할까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제가 다 안심이 됩니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 비록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고, 불을 마음껏 피울 수 없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머물 수 있는 그곳에 돌아온다는 것만큼 평안한 일도 없을 겁니다.
집은 편안해야 합니다.
집은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이 하나의 그림
좁아도
내 몸 하나 뉘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중요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비와 바람을 피할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다는 것
나의 손때가 묻은 것들
나와 시간을 함께 한 것들에게서는
희미해도 익숙한 냄새가 나지
오래된 물건에는
그래서 그것을 사용한 사람의
온기와 냄새가 배어 있어
그것들에 둘러싸여
고요히 머물 수 있는 시간을 사랑해
그래도
엄마가 빨리 돌아오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