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총무, 마케터를 만나다.

빛이 나는 것만 같았어요. 뺀질뺀질거려 광이 나더군요.

by 김작은

작은 회사를 다니다 보니까 빌런 이야기가 경영진으로 쏠릴 뻔했지만, 마치 자존심이 상하다는 듯 동료 직원들도 분발했죠.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중소기업 잡무 이야기'의 세계관은 영웅은 없고 빌런만 있답니다.

오늘은 마케팅팀의 홍보 과장님 이야긴데요. 최근에 이분과 어떤 일이 있었냐면 자신이 다루는 사이트에서 이사님이 법인카드를 잘못 사용하시어 제게 다른 방식으로 수정 요청을 해왔습니다. 말이 너무 장황하고 못 알아듣겠어서 그럼 [이 카드로 이 사이트에서 이 상품을 결제하면 됩니까?]하고 한 줄로 요약해서 물었더니 [네 맞습니다!] 하고 답변이 왔죠. 그대로 했더니 뻥이었어요. 그게 아니었대요. 메신저를 캡처해서 맞다고 하지 않으셨냐니까 [지송요]라고 하시더군요. 본인의 일에도 검토 따위 전혀 하지 않으시는, 룰루랄라 한 홍보과장님과 투닥거린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합니다.


저희 회사에는 마케팅팀이 두 부류로 나뉩니다. 홍보와 MD. 저는 이 회사에서 극과 극으로 MD와 홍보를 만났어요. MD 한분은 인생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되기까지 우애를 다지게 되었지만, 홍보 한분은 이 회사에서 처음으로 언성을 높여가며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친한 MD 한분만 남고 마케팅팀 직원들이 모두 퇴사했을 때 저까지도 홍보의 업무를 몇 개 받아 업무로 엮이게 됐거든요. '과장'으로 입사하신 홍보 담당자한테 되돌아갈 줄 알았던 일은 제게서 떠나가질 않더군요. 이 정도의 서사만 왔는데도 벌써 타 팀의 일까지 분장되는 중소기업 잡무 서사가 끔찍한데 그 업무를 같이 해야 할 홍보 과장님이 한술 아니, 열 큰 술은 더 뜨시니 맛이 좀 과하죠.


홍보를 위한 거래처에 물건을 납품하는 것까지는 지금도 제가 하고 있습니다만, 협의나 기획은 제 권한 밖의 일이라 업체에서 단가 및 상품 조정에 대해 요청할 땐 담당자인 홍보 과장님한테 전달드렸어요. 물론 업체엔 새로운 담당자라고 소개하면서 이름과 연락처도 알려드렸습니다. 그렇게 일단락되어야 할 일이 다시 얼굴을 내밀게 된 것은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어요. 거래처 이사님이 그 과장은 조금 껄끄럽다고 제게 다시 문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과장님 자리로 찾아가 상황을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자신은 뭐라고 한 적이 없다. 그냥 안 되는 건 안된다고 말했을 뿐이다. 왜 그쪽으로 다시 연락했는지 모르겠다. 저한테 그 내용을 다시 전해 달라."

저도 처음엔 거래처 이사님이 자신의 요구사항이 먹히지 않아서 저한테까지 말씀하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건 그저 시작에 불과했어요.


거래처들이 자꾸만 제게로 연락해서 과장님께 전달드린 것이 벌써 수차례가 넘었는데 언젠가는 거래처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시더군요. 본인이 관리하는 거래처의 전화번호를 달라니요? 싸한 기분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갔고 이젠 메모를 전달해도 연락을 하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러 홍보 과장님과 거래처, 양쪽 모두에 짜증이 치밀었습니다. 결국 거래처에는 홍보 과장님께 직접 연락하라며 약간 소리를 높여 통화했고, 과장님께는 왜 그렇게 연락을 안 하시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정말 태연한 얼굴로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태연한 얼굴에선 빛이 나는 것만 같았어요. 뺀질뺀질거려 광이 나더군요. 그 빛에 눈이 멀어 직급이고 뭐고 계속 업무에 대해 따졌던 것 같습니다. 입사할 때부터 가져간다 가져간다 하고 가져가지 않던 업무였는데 이제 와서 아예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 것과 전부는 아니더라도 자기 역할까지는 감당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용이 주였죠. 저희 팀 부장님께서 듣다 못해 회의실로 우리를 불러 상황을 조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엔 저에게 나무라듯 말씀하셨어요. 물론 대리가 과장한테 마구잡이 말을 퍼부었으니 저도 할 말은 없었습니다만, 상황은 제대로 말해야만 했죠. 상황을 정리한 뒤에 하신 과장님의 말씀에 또 한 번 뜨악했습니다.


"제 일이 맞긴 맞고요, 저는 그저 그 업체와 계속 거래를 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회의실에 부장님도 계셨지만 저는 또 한 번 뺀질거리는 빛에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벌써 2년 전 일이지만 멘트가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로 충격이 컸죠. 당시엔 아래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진 않게 따졌습니다.

'회사에서 업무를 하기 싫다고 안 하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 거래를 유지하건 말건 그것 역시 과장님이 직접 연락해서 결정하실 일이지 않느냐, 업체 측에선 과장님이 아무런 정보도 모르고 자꾸만 되묻는 것에 신물이 나서 제게 연락하는 곳들이 많은데 그게 과장급의 담당자가 할 처사냐, 제가 전달드린 내용까지 깡그리 무시해서 자꾸만 다시 연락 오게 하는 건 동료 직원에게 민폐 아니냐, 거기다가 자기 일이 아니라고까지 말씀하시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 거냐.......'


부장님도 오해한 사실에 대해 제게 사과를 하셨지만 과장님은 한 시간 동안 제게 사과를 하셨습니다. 너무한 것 아니냐고요? 죄송하지만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5분이면 끝날 사과에 장황한 핑계들을 더하느라 시간이 끌려서 사과받는 것조차 기분이 언짢았거든요. 그래서 그건 됐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자기한테 연결해달라고 하는데 그건 한 달 전에도 했던 이야기고 과장님께서 먼저 거래처에 연락해서 그런 일들에 대해선 본인과 이야기하자고 말씀하시라고 대안까지 제시하고서야 회의실에서 나왔습니다.



이번에 그분 밑으로 입사한 신입 부사수가 좋은 분인데...... 그럴수록 더 안타까워지는 건 왜일까요? 글을 쓰는 지금도 사수가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회사 메신저 단체방 초대도 안 해주고, 정보도 하나 제공하지 않고 홍보 기사를 쓰라고 하더니 부사수가 쓴 글을 검토하지도 않고, 검토하지 않은 채 부대표님께 제출하고, 부대표님이 피드백으로 주신 글을 읽고서야 우리 회사 제품이 이런 인증을 받았냐고 자신한테 묻고 있다며 하소연하네요. 신입 사원분 공차나 사드리며 위로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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