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대학 신입생 때였다.
학업에 필요한 자료를 찾는데 대학 도서관에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가장 많은 장서를 보유한 S대 중앙도서관에는 있었다. 나는 대학 도서관장에게 협조문을 요청하여 받아냈다.
그것을 가지고 가려는데 이를 알게 된 학과 학생회장인 J선배가 나에게 임무를 하나 맡겼다.
그 대학 건축학과 학생회장을 만나고 오라는 거였다. 선배는 내가 그를 만나서 ‘수건협’에 참여할 것을 설득해 보라는 당부였다.
수건협은 수도권대학 건축공학과 협의회였다.
군부독재에 저항하고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 가열찼던 시절, 대학마다 학생운동 세력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주축은 학생회 단체였다.
J선배는 건축을 사회 부문 운동으로 진행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국내 최고의 명문 S대 건축학과 학생회장에게 서한을 보내어 함께 협의체를 조직하자고 제안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J선배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했다. 자기네들은 독자 노선을 따로 걷겠다는 이유였다.
협의체 창설 대회를 곧 앞두고 있었는데 수도권에서 유독 S대만 빠진 것이다.
“이미 싫다고 했는데 내 말을 들을까요?”
나는 반신반의하며 선배에게 부정적 견해를 내보였다.
“설득 과정 중에 여러 대화가 오고 갈 거야. S대생들이 어떤지 네가 직접 몸소 경험해봐!”
J선배의 친형은 S대 출신이었다. 그래서 선배의 형이 얼마나 공붓벌레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내 형이지만, 정말 지독해. 공부만 놓고 보면! 그런데 말이야, 그들은 우리에게서 찾을 수 없는 특이한 게 있어. 바로 그걸 네가 그 아이들과 대화해 보며 느껴보란 거야.”
J선배는 그들이 독자 노선을 걷겠다고 한 것에는 특유의 엘리트주의가 깔려있기 때문이라 진단했다.
그들도 협의체의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자기들이 주도하고 싶어 한다고 판단했다.
나는 이를 선배의 확증편향으로 여겼다. 하지만 선배는 누구보다 S대생들을 잘 안다며 자기 생각에 오류가 없다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다음 날 S대 건축학과 학생회실을 방문했다. 그리고 J선배가 말한 학생회장을 만났다.
몇몇 임원진들이 우리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들었고 그 외 다른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자기네들끼리 서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J선배의 말대로 학생회장의 심지는 꽤 굳어 있었다.
여전히 자신들만의 독자 노선을 고집하려 했다. 그와의 대화 중에 나는 언짢은 감정을 조금 느꼈다.
노골적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뛰어난 자신들이 선두에 서서 일을 주도하고 싶은 엘리트 의식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왜 시간을 내서 이들을 만나보라고 했는지 그제야 선배의 의도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대화가 끊길 무렵이었다.
누군가 자신들의 선배인 K교수님을 아느냐고 물었다.
“당연하죠. 우리 1학년 지도교수님이신데!”
“와우, 그럼 혹시 그분께 캐드* 배우시나요? 그 분야 선구자 시잖아요!”
*캐드(CAD) 또는 CADD(Computer-Aided Design and Drafting)는 컴퓨터 지원 설계를 말한다.
캐드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멀찍이 떨어져서 잡담을 나누던 학생들이 달음박질하여 전부 내 곁으로 몰려왔다. 나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더니 삽시간에 열띤 학업의 장으로 변했다.
컴퓨터로 설계를 하는 것이 보편화된 오늘날이지만 당시는 완전 신기술 그 자체였다. 그리고 전문가가 없어서 S대에서조차도 가르칠 교수가 없었다.
다음날 J선배는 나에게 그 학생회장을 만난 소감을 물었다.
나는 오랜 시간 캐드 이야기만 주야장천 떠들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들의 학구열은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말과 함께.
그러면서 J선배의 판단이 절대 잘못되지 않았음을 충분히 느꼈다고 말해주었다.
비슷한 사례로 나와 같은 학년의 E여대생에게 들었던 말이 있다.
명문여대 재학생인 그녀는 자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우선 전제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음대, 미대생들을 자신들과 같은 대학 학생으로 안 본다는 충격적인 비밀 아닌 비밀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같은 대학일지라고 온전히 학력고사 성적만으로 입학 한 학생과 실기성적으로 입학 한 학생들 사이에 숨겨진 거대한 벽이 존재한다는 것에서 나는 가슴이 아렸다.
이는 어쩌면 현재도 수시와 정시 입학으로 학생들이 서로의 벽을 치는 것과 다를 바 없겠다.
치열한 객관적 경쟁으로 선발된 내가 더 엘리트에 가깝다는 속마음을 정시생들이 품고 있어서 그렇다.
또 언젠가는 명문 Y대와 지방 모대학에 겸임교수로 계시는 분과 이야기 나눈 적 있다.
어느 날 Y대생이 그 교수께 강의 시간을 늦춰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유는 황당하게도 치과 예약시간 때문이란다.
그분은 그 학생 하나의 지극히 개인적 사유로 백여 명의 수강생들에게 양해를 구할 순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류대생의 거침없는 자존감이 하늘을 찌른다며 혀를 차셨다.
그에 비해 지방대생들은 자존감이 매우 낮다는 말을 덧붙이며 이 점을 심히 안타까워하셨다.
그분 또한 S대 졸업생이자 굴지의 대기업 출신으로서 자존감은 물론이거니와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던 때가 있었다고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을 갖고 예수의 낮은 자세를 배우면서부터 거듭나는 삶을 산다는 신앙고백을 들었다.
이처럼 엘리트 의식을 깨는 힘은 오직 ‘올바른 신앙’ 외엔 답이 없어 보이기까지 하다.
우리 사회 곳곳엔 이런 엘리트 의식이 오래전부터 깔려있었다.
엘리트élite는 불어로 특별한 기준으로 선발된 소수를 말한다.
사전 정의로는 사회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은 자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다.
옛 귀족 사회에서 그들은 소수의 타고난 특권층이었다면 현대 사회에선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와 두각을 내는 소수의 유능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어느 사회와 국가든 개인적으로나 조직 내에서 이들의 역할을 절대 얕잡아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엘리트를 생산하는 일류대학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 그 자체도 문제가 아니며, 권위 있고 돈 잘 버는 직업 그 자체 또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속에서 자라나는 엘리트 의식이 특권 의식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 각 조직을 총망라하여 퍼져있다. 노·사·정계와 학계 그리고 연예계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의 모든 조직을 비롯하여 특수한 군조직까지도 절대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수의 특별한 엘리트를 어떤 방식으로든 없애려는 노력은 어리석다.
그들이 때론 다수도 못 할 일을 해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에겐 승자독식 하려는 못된 습성이 있다.
특별하게 선발된 소수라는 엘리트 개념 자체는 귀족 사회였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그 특별함이 내가 제일 잘나간다는 오만함과 내 멋대로 행할 수 있다는 특권 의식에 빠져 내 중심 속 내 멋대로의 삶을 살게 만든다.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의 선민사상(선민의식)이 문제가 되고 비판받는 이유는 신에게 자기들만 선택받았다는 대단한 착각 때문이다. 그 엘리트 의식에 저항하던 유대인 이었던 예수가 유대인에게 희생되었다.
특별하게 선택된 소수가 예수처럼 엘리트 의식을 버리고 낮은 자세로 삶을 사는 건 절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조금이나마 개선의 기회를 찾는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국내 최고의 대학을 나오고 법조인의 수장이기까지 했던 엘리트 대통령이 최고의 엘리트 군조직을 동원하여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엘리트들의 이런 비극적 사태는 언제든 다시 재발할 수 있을 것이다.
엘리트 중의 극소수가 국가를 바로 세우기도 하지만 반대로 국가를 망칠 수도 있음을 우리가 목격한 이상 이제 더는 변혁을 위해 지체할 틈이 없다.
결론적으로, 엘리트 의식은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지만, 특권 의식으로 변질되면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을 혁신하여 겸손과 공동체 의식을 기르고, 엘리트의 사회적 책임을 명확히 하며, 시민 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감시를 통해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금은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가 모두 이러한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