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음료 판매대를 지나칠 때였다. 내 시선을 순간적으로 잡아끈 알루미늄 파우치. 그것은 칡즙 음료였다. 내 혀가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수십 년 전 그 칡 맛을 기억해내고 입 안에 군침을 돌게 했다.
평상시 마트에서든 편의점에서든 일부로 눈길을 두지 않는 곳이 바로 음료 판매대다. 온갖 첨가물과 설탕 또는 액상과당으로 범벅이 된 음료는 대사증후군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요새는 무설탕을 표방하여 단맛을 대체하는 것들로 음료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단맛을 일부러 즐기고 싶지는 않다. 설탕이나 감미료의 장기 과다 섭취는 어차피 둘 다 나쁘다. 단지 다르게 나쁠 뿐이다. 문제는 ‘당’이 아니라 ‘단맛에 대한 빈번한 자극’이다. 그래서 감미료는 설탕의 대안이지, 단맛 중독의 해결책은 아니다. 음료 판매대는 이렇게 단맛 중독을 일으키는 제품들이 한가득하다.
물론 차 종류 음료도 다양하지만, 그 역시 기호 음료일 뿐 물 대신 매일 마시는 습관은 건강에 좋지 않다. 그래서 당장 마실 생수 외에 음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편이다. 그런데 그날은 그 칡즙 알루미늄 파우치가 내 혀의 오랜 감각 속 감추어졌던 단맛을 끄집어냈다. 나의 뇌는 얼른 하나를 집으라고 신호를 주었고, 내 손은 거침없이 그것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칡은 꽤 쓰다. 그렇다고 베르베린이나 고삼(苦蔘)에 비할 바는 아니다. 약용식물과 한약재 기준의 합리적 상대값으로 10단계를 놓고 보자면 대략 3, 4단계에 해당한다. 칡의 쓴맛은 생리활성 물질 때문으로 알려졌다. 쓴맛과 떫은맛을 유발하는 이소플라본, 떫고 마르는 느낌을 주는 폴리페놀, 그리고 씁쓸한 여운을 주는 소량의 사포닌 성분 조합이 혀를 즉각 때리지 않고 씁쓸함의 뒷맛을 만든다. 그래서 먹는 순간보다 삼킨 뒤에 쓴맛이 퍼지는 타입이다. 그런데 칡즙에서 내가 특유의 단맛을 기억해낸 건 어린 시절 칡을 날로 씹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재래식 화장실, 아궁이, 굴뚝. 연탄, 기와 또는 석면슬레이트 그리고 야산(野山)과 송아지는 내 어린 시절 살던 동네의 일상적인 오브제(objet)들이다. 이렇게만 보면 어디 시골 출신이지 싶지만, 호적법이 있었을 당시 본적을 종로구에 둔 서울 토박이다. 서울 변두리 지역에 따라선 어린애들이 자연을 접하며 노는 것이 어렵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간혹 조부모님과 함께 살던 고모 댁에 가 있던 적이 많았는데 유동 인구 많은 도심지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곳에서 지낼 때는 골골하던 아이였던 내가 시골 같은 집에 오면 금세 기력을 회복했다. 삶의 질은 현대식 주거환경이 재래식 주거환경보다 훨씬 좋은 게 사실이지만, 그것이 면역력을 약화한다는 불편한 역설도 함께 한다.
면역력의 형성은 주변환경과 먹는 음식 그리고 신체 활동 정도에 큰 영향을 받는다. 고모의 작은 냉장고에는 사이다와 콜라가 항상 있었다. 특히 초록색 병에 담긴 사이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톡 쏘는 탄산과 함께 그 짜릿하게 전해지는 단맛은 그야말로 적절히 표현해낼 단어가 없을 정도다. 고모는 군것질을 즐기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 암묵적 허용된 민생 유통망인 보따리 장사치에게서 구입한 미제 초콜릿과 사탕, 과자 그리고 치아에 쩍쩍 달라붙는 캐러멜이 언제나 내 손에 들어왔다. 고모 댁에서는 입이 심심할 날이 없었다. 할머니가 고쟁이와 옷장 서랍 깊숙이 간직했다가 한두 알씩 주던 상쾌한 박하사탕도 단맛을 중독시키는 주범이었다. 나이 들고 당 떨어지면 초콜릿과 사탕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성장기 아이에겐 당 중독 말고는 딱히 도움이 될 게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군것질이 늘고 집에만 있었다. 할 일은 딱히 없고 혼자 이리저리 방안을 굴러다니는 날이 많으니 행동반경은 좁았다. 골골 안 하면 그것이 되레 이상할 노릇이었다. 기력 없어 보이는 나를 어머니가 들쳐 없고 집으로 데려오면 다시 기운이 쌩쌩했다고 한다. 당연히 집에 와서는 사이다를 물처럼 먹은 기억도, 초콜릿과 캐러멜 그리고 사탕을 한 움큼씩 집어 먹은 기억도 없다. 마트나 편의점이 사방팔방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보니 고모가 즐겨 먹던 그 다디달던 미제 간식들을 먹으려면 보따리 장사치나 암시장 혹은 재래시장의 미제 코너를 발품 팔아 찾아 나서야만 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설탕 덩어리를 먹을 일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그때 최고의 간식이자 별미는 친구들끼리 모여 함께 뜯었던 개구리 뒷다리였다. 집에서 밥 먹는 걸 제외하면 동네 친구들과 놀러 나갔다. 그저 온종일 노는 게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에겐 가장 최고의 면역 수단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동네 야산을 오르내리며 전쟁놀이하던 어느 날이었다. 대장의 진두지휘 아래 조무래기들이 산기슭을 박박 기었다.
그때였다.
한 친구가 뭔가 발견한 듯 소리 질렀다.
“야, 칡이다, 칡!”
삽시간에 아이들 여럿이 달려들어 서로 합심하여 칡을 캤다. 비록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작게 나누어 잘근잘근 씹었다. 처음 먹었을 때의 쓴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씹으면 씹을수록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단맛이 우러나왔다.
칡은 한자로 ‘갈(葛)’이다, 그것이 등나무 ‘등(藤)’과 합쳐지면 좋지 않은 ‘갈등’이 되는 것이다.
칡과 등나무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갈등처럼 정말로 칡은 땅속 깊이 박혀 있으면서 주변 나무뿌리와 엉켜있기에 캐는 작업이 매우 고되다.
전쟁놀이를 잊은 우리는 그 쓰디쓴 칡을 단맛이 우러나올 때까지 씹고 또 씹었다. 칡은 그렇게 우리에게 쓴맛과 단맛을 동시에 주었다. 그리고 그 순서는 단맛이 아닌 쓴맛이 먼저였다.
인내심 없이 쓰다고 도중에 뱉으면 칡 특유의 단맛을 절대 맛볼 수 없다.
삶의 갈등도 매한가지다.
‘갈(葛)’은 그렇게 ‘등(藤)’과 쉽사리 분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갈등 봉합의 과정이 쓰다고 얽힌 관계를 유지했다간 인생의 단맛은 평생 느낄 수가 없다.
집에 와서 칡즙 알루미늄 파우치를 개봉했다.
정제수를 넣지 않은 생 칡의 검은색 즙은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입안에 감도는 맛은 그래서 불쾌했다. 오래도록 잘근잘근 씹지 않는 칡은 그렇게 입에 쓸 뿐이었다.
별로 힘들지 않게 집에서 칡즙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입안의 침과 섞이지 않는 즙만 짠 칡은 쓴맛만 남긴다. 칡즙은 수요가 적다 보니 온라인매장 아니면 시중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없다. 그 대신 단맛 간식거리는 지천으로 널린 요즘이다. 그냥 단맛만 있는 가공식품을 자주 섭취하면 당연히 우리의 면역력은 파괴되고 건강을 해친다.
쓴 게 몸에 좋다는 자연의 이치는 분명 신비롭다. 칡처럼 강한 쓴맛과 분명한 단맛이 한 뿌리 안에 공존하는 약용식물은 매우 드물다.
그런데 칡은 쓴맛이 단맛으로 변하는 시간의 메타포라 할 수 있다.
삶의 갈등을 치유하는 일에는 인내가 필요하고 노력도 필요하니 말이다.
오랜만에 맛본 칡은 즙으로 마시기에 편했지만 그만큼 쓴맛만을 내게 남겼다. 예전에 비해 분명 좋은 세상이지만, 칡이 안겨주는 그 신비한 시간을 우리가 느낄 틈이 없는 건 분명 안타깝고 불행한 노릇이지 싶다.
그래서 나는 그날 칡즙을 끝내 다 마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