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감 강박 사회와 육아의 방향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는 감정을 중요시하는 흐름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특히 모 박사님으로 대표되는 감정 중심 육아는 “아이의 감정 읽기”, “공감 중심 양육”을 전면에 내세우며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와의 관계 회복, 상처 치유의 도구로 이 방식을 따랐다. 감정은 억눌러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표현해야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는 분명 시대적 전환의 한 축이었다.
하지만 교사로서, 또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나는 최근 그 ‘감정 중심의 교육’이 만들어낸 부작용을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
지금 아이들은 감정 표현에는 익숙하지만, 감정의 절제, 책임, 조율에는 매우 서툴다. 자신의 감정은 마치 정당함의 증거가 되었고, 공감받지 못하는 감정은 억울함이 되며, 공감하지 않는 타인은 ‘냉혈한’ 혹은 ‘나쁜 사람’으로 몰린다.
이는 사회 전반의 인간관계를 급속히 왜곡시키고 있다.
“나는 상처받았어.”라는 말은 이제 단순한 감정표현이 아니라, 도덕적 비난의 시작점이 되어버렸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 사이에서도 감정은 관계를 위협하거나 조종하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공감’이라는 말의 과잉된 이상화가 있다. 공감은 본래 선택 가능한 ‘이해의 다리’였지만, 지금은 ‘반드시 갖춰야 할 도덕 의무’로 자리 잡았다. 물론,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공감 양육은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과거 양육 문화를 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작용으로 과도하게 감정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만연해지고 있다.
감정은 중요하지만, 언제나 우선해야 할 기준은 아니다.
공감은 중요하지만, 강요되어선 안 된다.
이제 우리는 다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이의 감정을 읽는 것”만큼, 감정의 책임을 가르치고,
“공감을 실천하는 법”만큼, "공감을 거절당할 수 있는 현실도 가르치고 있는가?”
학교는 아이들이 감정에만 머무르지 않고,
감정을 하나의 정보로 해석하고,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절제와 책임, 경계와 다양성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부모 역시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감정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떻게 조율되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제는 감정을 해방시키는 시대를 넘어, 감정을 조율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시대로 넘어가야 할 때이다. 그 전환의 첫걸음은 ‘공감’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강박과 압박의 구조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