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귀새끼 Jul 06. 2016

언니 노릇

언니라는 이름의 짐은 사실 부모의 몫일 지도

언니가 같이 안 간대!

  둘째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어버립니다.  큰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랑 손잡고 달려갑니다.  등굣길은 집을 나서도 전쟁입니다. 

  평소에 늘 언니를 쫓아다니면서 언니랑 놀고 싶어 하는 둘째입니다.  욕심부리고 싸울 때는 언제고 금세 저러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언니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3월 초에는 어린이집에 혼자 가는 것이 싫어서 하루 종일 집에서 보낸 적도 있습니다. 


  큰 아이가 동생에게 상냥한 언니는 아닙니다.  다른 동기들에게는 친절하게 잘 대하는 것 같은데, 동생에게는 늘 무심한 편입니다.  엄마 아빠가 동생을 돌보아주라거나 우는 것을 달래주라고 다그쳐야 억지로 언니 노릇을 합니다.  농담으로 동생 하나 더 생기면 어떠냐고 물었을 땐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언니 노릇.


  오늘은 그냥 큰 아이를 먼저 보냈습니다.  학교 갈 시간이 임박하기도 했지만, 왠지 언니 노릇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처럼 친구와 즐거운 등굣길이 세 살 터울 동생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형제야 세 살 터울이라도 같이 늙어가는 처지이지만, 요만한 녀석들의 세 살은 무척 큰 차이임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언니라서 늘 양보하고 언니니까 늘 챙겨야 하는 짐이 적지 않게 부담스러운가 봅니다.  혼자일 때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부모의 입장이지 본인이 기억하는 시간부터는 늘 동생에게 돌아간 것들 뿐일 테니까요.  기다리는 것, 참는 것, 양보하는 것, 성가신 일, 감당해야 하는 모든 것들이 기억이 허락하는 처음부터 인생에 꽉 차있는 자리였습니다.  


  한 번은 둘이서 다투길래, 얘기를 들어보니 둘째가 잘못했습니다.  퉁명스럽게 “네가 언니한테 잘 못했네.”라고 대꾸했습니다.  큰 아이가 제 편을 든 아빠 모습에 놀라 “아빠가 웬일이지.”라며 혼자 읊조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세상 모든 맏이들의 숙명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습관처럼 큰 아이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당연히 아이들끼리의 다툼은 큰 아이 혼자일 때는 없던 성가신 일입니다.  어린 둘째가 더 많이 칭얼거리고 고집부리기 마련입니다.  말로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큰 아이와는 달리 떼를 쓰는 둘째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편합니다.  큰 아이는 설득이라는 것이 통하니까요.  막무가내 둘째의 성가신 행동을 빨리 피하고 싶어서 늘 첫째 아이에게 짐을 덜어낸 것입니다.


  그냥 좀 해 줘라. 언니가 동생 좀 돌봐 줘야지.  아빠가 나중에 다른 것 사줄게.  그냥 하나 더 그려.  네가 좀 양보하면 안 돼?  넌 딴 거 가지면 되잖아.  그만 울게 좀 달래 봐.  언니가 좋아서 그런 거야.  나중엔 형제밖에 안 남는다 ….


 언젠가 색시가 첫째를 다그치고 나서 후회한 적이 있습니다.  언니라지만 그 아이도 아직 어린데, 동생에 비해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것 같다고 말입니다.  듣고 보니 당연한 듯 너무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맏이는 더 부모 마음을 이해해주고, 잘 따라주길 기대하기만 했습니다.  아이의 짐이 얼마나 클지는 가늠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맏이였음에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큰아이가 작은 아이만 했을 때에는 어떻게 대처했나 떠올려 봐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십중팔구 그때도 언니 운운했을 터입니다.  앞으로도 별반 차이가 없을지 모릅니다.  결국 둘째가 빨리 철들길 기다려야 할까요?  




  셋째 낳으란 소린 하지 마세요. 




 이미지 참조 :

매거진의 이전글 보여주지 못한 장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