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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귀새끼 Jul 22. 2016

매미 허물

시원하게 허물을 벗고 싶다

매미 껍질이다!

  딸아이가 가던 길을 멈추고 얼른 나무에 붙은 매미 허물을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역시 매미가 한창 시끄럽게 우는 한여름답다.  아파트 화단 야트막한 회양목에도 매미 허물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움직이는 매미는 쉬이 잡히지 않지만, 매미 허물만으로도 아이들에게 좋은 장난감이다.  잠자리채까지 동원해서 잔뜩 잡아놓은 매미 한가득 담아 며칠 후 죽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지 싶다.  

  다섯 살 딸내미는 행여 깨어질까 조심스럽게 손에 담는다.  정작 주인이었던 매미는 그것을 벗고 얼마나 시원했을까. 한 허물 벗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어딘가 또 자리 잡고 시원하게 울어 젖히는 인생이 얼마나 즐거울까.  저는 즐겁겠지만, 베란다 방충망에 붙어서 종일 울던 매미 때문에 시끄러웠던 생각이 나니 배알이 꼴린다.  새삼 허물 벗은 그 인생에 질투도 난다.  좋겠다 너는.


  사람도 허물을 벗고 한 번에 삶이 달라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다 그렇게 된 성공신화  말고, 누구나 다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삶의 지위이건, 과거를 돌이켜 떠올릴 때마다 후회하는 성격의 문제이건, 누구나 원하면 싹 바꾸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  

  종종 힘겨운 문제를 겪고 나서 개과천선하거나 삶의 가치가 달라지는 사람들을 보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일부러 고난과 고통을 겪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의지가 강하면 가능할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완전히 바뀔 수 있는 열쇠는 나 스스로에게 있다고는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던가.  의지야 말로 강한 이름을 가진 가장 약한 존재 아닐는지. 

 

 ....


 생각을 고쳐먹었다.  매미가 허물을 벗은 것은 한순간이지만, 우리가 아는 매미가 되기 위해서 허물 속의 삶이 얼마나 꾸준하고 끈질겨야 했는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질리도록 못난 나의 일상과 모습이 반복된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한 번에 허물을 벗어던지는 멋진 격변도 사실은 커다란 변화의 한 과정이지 않은가.  답답하고 보이지 않을 만큼 느린 변화의 시간을 받아들이자.  수많은 번복을 이겨내는 매일의 의지라 여기니 생각보다 강한 이름이다.  그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몸부림치는 것은 가치 있다.  매미도 한 여름을 위해 그렇게 애쓰지 않던가.   매미보다 기회도 많다.  한 여름에 우는 것 말고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그보다는 내 삶이 다양성을 품고 있다.  같은 허물 속에서 꾸물거리더라도 저마다 비슷한 허물을 하고 있어도 그 속에 상상하는 나의 미래는 모두가 다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신비하고 즐거운 것일지 모른다.  허물을 벗을 때까지 지루함도 그런 상상으로 버티어낼 수 있다면, 내 의지에게 보탬이 되려나. 


  이제 좀 매미가 덜 부러워진다.  


  딸내미가 금방 떼어낸 매미 허물이 망가지니까 새 허물을 찾아 집는다. 








나는 지금 허물을 벗은 것인가, 아니면 아직 벗기 전인가?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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