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첫째 아이가 와서 물었다.
"엄마, 자식이 맛있게 먹는 거 보면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게 진짜야?"
"음...."
"엄마도 그래?
내가 맛있게 먹는 거만 봐도 배불러?"
"어떻게 밥을 안 먹었는데 배가 부른 거야?"
쉴세 없이 쏟아지는 아이의 질문에 정신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질문이 쉴세 없이 날아와서라기보다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해서였다.
왜 그 순간에 자식에게 생선살을 다 발라주고 평생을 생선 머리만 먹던 엄마가 나이가 들어 아프자 자식이 생선 머리만 잔뜩 가져와서 좋아하던 생선 머리 드시라고 드렸다던 웃지 못할 이야기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아들아, 엄마는 그래.
엄마는 너희가 그 작은 입에 음식을 넣고 오물거리면서 먹는 모습이 진짜 사랑스러워.
맛있게 먹으면 다 내어주고 싶어.
엄마가 먹던 것도 내어 주고 싶을 만큼...
근데 엄마는 먹고 싶어도 참고 너희에게 주는 거지 너희가 먹는 거만 봐도 배불러서 주는 건 아니야.
안 먹으면 엄마도 배고파.
그러니까 너희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엄마가 행복한 거지. 진짜 엄마 배가 부를 거라는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의 너무나도 솔직한 대답에 아이의 실망감인지 당황스러움인지 모를 표정을 보다 웃음이 터졌다.
예전 같으면 "그럼, 엄마는 우리 아가들 맛있게 먹는 거 보면
밥 안 먹어도 배불러." 했을 텐데.
그렇게 아이에게 희생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도 부모의 희생을 배우게 되는 게 나는 왠지 좋은 교육 같지 않았다.
그것이 부모의 희생이라는 걸 어른이 되어 철들면서 알게 되는데 그땐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많다.
그러면 자식은 그 후회 속에서 아프다.
옆에 있을 때, 할 수 있을 때 늦기 전에 부모의 고마움을 느끼고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엄마도 나중을 위해 지금을 희생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작은 것부터 행복을 찾아야 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그 옛날, 부모들도 자식이 배불리 먹는 모습에 흐뭇해서 내 배고픈걸 잠시 잊을 뿐.
잠시 뒤 현타가 오면 금방 느끼지 않았을까?
엄마도 몹시 배가 고프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