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규태를 금가락지 인지 알고 골랐는데 살아보니 놋 가락지도 안 되는 거야. 근데 더 압권인건 시부모는 나한테 다이나 나 준지 안 다는 거지.
정말 딱 그거다. 너무 명확한 정의.
정말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때론 다독이고 때론 같이 싸워가며 내 옆을 지켜주었다.
그래.금가락지고,놋가락지고 다이아고 다 상관 없는거다. 어떤 반지든 내가 끼고 다닐 반지고, 그 반지의 가치는 나만 아는거다. 내가 다이아 대하듯 하면 다이아 반지고, 놋가락지 대하듯 하면 놋가락지 되는거지 뭐. 내 인생 나 하기 나름이다. 이쁨도 미움도 다 제 할 탓이다.
그렇게 이 사람과 결혼 생활에 적응하고 아이가 생기고 투닥투닥 아이와 함께 조금씩 엄마로 성장해가던 어느 날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갑상선암...
아빠가 췌장암 진단을 받고 2년간 투병 생활을 하시다 아빠를 보내드린지 1년 이 채 안되고 생긴 일이었다.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평범하게 나도 남들 누리는 평온함을 느끼면서 살고 싶었는데 왜 나한테는 아픈 시련이 자꾸 찾아오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설상가상으로 갑상선암으로는 드물게 임파선과 림프절 쪽으로 네 군데나 전이가 돼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의사 선생님은 나를 위로해주셨지만 건강하다가 하루아침에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는 사람이 되는 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절망감이었다.
방사능 옥소치료를 받고 요양병원에 입원해 요양을 하면서 정말 많은 책들을 읽었다.
살면서 이렇게 남이 해 준 밥을 먹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좋아하는 책 속에 파묻혀 아무 생각없이 지내는 호사를 누려 본적이 있었나?
안타깝게도 내 기억속에는 없었다.
그래서 마음 편히 호사를 누리기로 했다.
예전 직장 동료들.
그 보다 더 전에 맺었던 소중한 지인들.
소중한 인연들이 나의 아픔을 걱정하고 위로 해주었다.
진짜 참다운 인연은 고난이 와야 알아볼수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는 많이 아팠지만 씩씩하게 잘 이겨냈고,
무늬만 친한 사람과 진심으로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분노하고 절망해도 바뀔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냥 받아들이기는 마음 편하다.
맞서 싸워서 바꿀수 있는 일엔 최선을 다해 싸우되, 그렇지 않을 때엔 과감하게 받아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