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은 아니지만 무명입니다.
알아봐 준다는 것.
알람이 필요 없는 하루다.
이불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달아나버린 잠을 찾아본다.
이미 멀리 가버린 졸음은 눈만 말똥말똥 뜨게 한다.
쓸데없이 하루가 길게 생겼다.
일정도 없고 만날 친구도 뭣도 없는데
혼자 노는 것도 못한다.
쌓인 수건들을 세탁기에 돌려놓고 분리수거를 하러 1층으로 내려간다.
'아..'
4캔에 만 원짜리 맥주 캔들만 쏟아져 나올 때마다
관리실 아저씨의 눈길이 괜스레 부담스럽다.
평일 오후 12시쯤, 자다 일어난 몰골로 나와서
찌그러진 맥주 캔들을 쏟아붓는 젊은 여자를 어떻게 생각할까.
" 맞지?"
"... 네?"
"TV 선전에 '딱 좋네!' 아가씨 맞지?"
"아.. 네...!"
"어쩐지 내가 낯이 익는 다해 가지고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
딱 10층 아가씨인 거야! 하하하하 "
순간 반사적으로 안 감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마스크로 인해 보이는 유일한 이목구비인 눈을
최대한 반달로 뜨며 웃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엔 가벼워진 분리수거 통과 함께
내 마음도 조금 가뿐해진 느낌이었다.
아니, 사실 많이.
8년째 연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8년째 연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라는 표현이 맞다.
끼도, 재능도, 인맥도, 비빌 언덕도 없어
매번 맨 땅에 헤딩을 하며 머리가 동강 날 지경이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다.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 나를 미디어에서 보았다며 알려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또, 절대 못한다며 내 미래를 확신했던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주었던 상처들이 여기저기 다양한 자국으로
남은 것을 보여주며 말해주고 싶다.
난 괜찮다고.
상처 주셔서 감사하다고.
멈추지 않았고 그로 인해 더 강해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