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퇴근하는 길이면 엄마 생각이 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전화를 건다. 그때쯤이면 주로 식사 후 TV를 보고 계실 때다. 아직 메인 드라마를 시작하기 전이라서 방해받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별다른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주로 내가 묻는 건 두세 가지이다. 밥은 먹었는지, 뭘 먹었는지, 오늘은 뭘 했는지. 엄마의 대답도 비슷하다. 요즘에는 미국에서 친구가 왔다며 매일 친구 만나서 놀러 다닌다고 하셨다.
엄마의 친구분은 내가 미국에 갔을 때 직접 뵌 적이 있다. 그 집에서 한 달 정도 홈스테이를 하기도 했다. 엄마 친구 아들이 나보다 9살인가 많았는데 굉장히 직설적인 편이라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내가 잠옷 입은 것을 보고 다리가 짧다고 했고(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본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보고 cocky 하다고도 했다. 이유는 공항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도움을 안 받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모습이 그렇게 보였다나...? 나는 단지 최대한 내 선에서 해결하려는 독립적인 사람인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는 뭐 친해져서 책도 받고 했다. 말은 이렇게 대놓고 해도 착한 오라버니이다.
아무튼 여러 모로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던지라 친구분은 잘 지내고 계신지, 아저씨랑은 어떻게 만나서 미국까지 가게 되었는지 물었다. 질문이 끝나자마자 굉장히 디테일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런데 갑자기 결론이 왜 그쪽으로 튀었는지 모르겠지만 엄마 친구 중에 자녀가 솔로인 경우는 우리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네... 갑자기요? 그래서 너무 속상하다고 말씀하시길래 있는 논리 없는 논리를 끌어다가 설명해 드렸다. 인간이 100살까지 산다면 결혼 후 커플로 살아갈 세월이 60년이 넘는데 굳이 지금 시점에서 불안해하며 솔로 생활을 단축시킬 이유가 없다고. 나는 솔로 생활을 충분히 즐기며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결혼 생활을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장밋빛 미래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결과가 좋을 때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혹여나 반박을 하실까 싶어 미래에 결혼을 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절 생각하지 못하시도록 원천 봉쇄했다. 그랬더니 연애라고 하라고 마지막 어퍼컷을 날려 주신다. 이건 뭐 방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연말까지 꼭 최선을 다해서 연애를 해보겠노라 다짐하며 안심시켜 드렸다.
전화를 끊고 나니 다시 생각하지 않았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주로 스트레스)이 올라왔다. 지금 현재 일이 바빠 전혀 그에 대한 생각이 없는데 사회적 압력에 굴해 연애를 해야 하다니. 무슨 수로 '노력'해서 연애를 한단 말인가. 노력해서 될 거였음 백 번도 넘게 했을 거라 장담한다. 다른 한편으론 속 타는 엄마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내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린다며 소개팅을 할 때마다 말씀드렸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으니 오죽 답답하셨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연말엔 마치 거대한 프로젝트 하나 런칭한다는 심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되나 싶다. 기승전결혼은 그래서 제일 무서운 카드다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