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그 추웠던 어느 날

#44.

by 수현

언니와 굴전을 먹으러 김명자 굴국밥 집으로 갔다. 밤이 되니 바람이 세차게 불고 너무 추워서 언니가 가져온 후디를 껴입고 걸어갔다. 왜 이렇게 춥나 싶었더니 내일이 수능날이다. 언니와 밥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수능날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수능을 치던 날도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엇보다 마음이 참 추웠다. 1교시 언어영역을 망치고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정말 집에 갈까 생각했었다. 그러다 엄마가 챙겨준 점심 도시락을 보고 그냥 갈 순 없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시험을 마쳤다. 중간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시험을 치르다 보니 자신 있었던 2교시 수리영역은 20분 만에 다 풀고 점검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울적하게 누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결국 실수해서 쉬운 걸 틀렸고, 그게 아쉬웠던 기억도 생생하다)


시험을 치르고 밖에 나갔는데 언니가 와 있었다. 나는 언니에게 달려가 눈물을 터트렸다. 다른 사람들은 가족들이 데리러 왔지만 나에게는 언니가 있었다. 언니가 말하기를, 예전에 언니 수능 쳤을 때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아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며 그래서 데리러 왔다고 말했다. 나는 언니 덕분에 서운함이 덜했고, 울적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참 고마웠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그 시절, 내가 힘든 이유 중 일부는 가족 때문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힘든 순간순간에 함께하는 가족, 친구들이 없었다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그땐 몰랐지만 사회에 나와서 부딪치면서 세상엔 다양한 일들이 존재하고, 개인의 가능성도 무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단 하나의 선택지만 있다고 생각했던 암울한 시절이 지나서 그리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험 하나에 인생이 좌지우지된다는 힘든 생각은 안 하면 좋겠다.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거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될 수도 있으니까. 주변에 응원해줄 고등학생은 없지만,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다.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 뭐든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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