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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액션건축가 Oct 27. 2020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인생의 나침반이 되는 문장이 있나요?

TOPCLASS 연재글입니다.



요즘 나는 삶의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과정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다. 잔잔했던 마음에 파도가 치고, 태풍이 불고, 도무지 무엇 하나도 집중할 수 없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매우 단순한 사람이라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데, 생각의 흐름이 현재의 일에 도통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미래를 떠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 온통 시시때때로 변하는 ‘어떨까’ 투성이다.


분명 욕망하는 것을 제대로 듣지 못해 발생한 사건임은 확실한데,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두 가지를 알고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머릿속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길 천천히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는 것과, 여행이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회사를 다닐 때 그토록 많은 여행을 떠났나 보다. 매일 눈을 뜨면 보이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곳에 나를 두기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이토록 오래 나를 견디기 힘든 상황에 둬도 되는가’ ‘시간이 지나면 정말 괜찮아질까’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어떤 맛일까’ 같은 알쏭달쏭한 주관식 문제의 정답을 찾기 위해.


네모난 회사 책상 위에 놓인 색깔 없는 15인치 노트북과 일정이 빼곡한 다이어리가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금요일 저녁이 되면, 나는 주저 없이 떠났다.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부릉부릉 자동차를 달렸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전주의 남부시장 한쪽 벽면에서 발견했다. 내 삶의 글귀를.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그날 이후로 나는 이 문장을 신성한 주문을 외우듯 자꾸만 읊조리게 됐다. 그리고 한 음절 한 음절 떼어내 나만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힘을 썼고, 그 뜻이 명확해진 어느 가을, 회사에 작별인사를 건넸다.


1. 아주 잘 살자.

=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어보겠습니다.


2. 적당히 벌고.

=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겠습니다. 그것으로 돈도 벌어보겠습니다.


소비가 적은 삶을 미리 연습했고,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생활비를 모아뒀기 때문에 통장 잔고로 머리가 아플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 한 곳에서 ‘아주 잘 살자’에 저항하는 숨은 복병을 만났다. 쉬어본 적이 없는 나, 그래서 쉬는 것을 할 줄 모르는 바보 같은 내가 나를 괴롭혔다.


내 삶의 다음 문장을 찾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라고 나에게 시간을 선물로 줬는데도, 눈은 해야 하는 일을 좇았고, 마음은 불안해져만 갔다. 불면증이 찾아오고, 입맛이 없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불안해했다. 연필이 나에게 왜 편하게 못 쉬냐고 물었지만, 나는 종이 위에 눈물만 떨궜다.


작은 백팩에 옷가지 몇 개만 챙겨 여행을 떠났다.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안동이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비구니 스님이 혼자 계시는 작은 암자에 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스님과 함께 하얀 쌀밥을 지어 먹고, 백구 녀석을 산책시키고, 불당에 앉아 풍경 소리를 들으며 멍 때리다가, 이따금씩 불경도 읽고, 청소도 했다. 잡생각이 들 때는 온몸이 푹 젖도록 절을 했고, 산중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지하수로 머리를 감았다. 단순하지만 규칙적인 삶이 지속되니 머리가 맑아졌고, 많은 것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과,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뒤로 5년이 흘러, ‘아주 잘 살자, 적당히 벌면서’ 미션을 97% 완수했다. 그래서인지 내 안의 또 다른 욕망이 용솟음친다. 지금의 삶이 너무 좋은데, 어딜 가냐고 묻는 과거의 나와 새로운 모험을 떠나고 싶은 미래의 내가 나누는 대화의 결말을 내기 위해, 내 삶의 다음 문장을 찾기 위해 또다시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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