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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액션핏 박인후 Oct 13. 2023

베컴이 은퇴 경기에서 눈물을 흘린 이유

나의 노동이 특권과 시혜, 권리가 되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많은 생각들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편견, 고정관념, 인지부조화, 부정적인 시그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간의 본성 등에서 기인한다. 사회적으로도 점점 그런 생각들에 많은 사람들이 더 동참함으로써 그런 생각들이 더욱 주류가 된다. 그리고 특정 세력이 그런 생각을 유통시키는 것도 아니고 고의는 아니겠지만 세상의 어떤 집단들은 목적과는 상관없이 그런 틀린 생각을 강화하도록 세상을 만든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1. 국회의원들과 정치인들은 무능하고 부패했다는 생각은 주로 언론이 만든다. 정치적 냉담과 무관심은 민주주의 장점을 버리고 단점을 부각한다.


2. 몸에 좋지도 않은 음식, 별로 필요도 없는 물건 등 자본주의는 과소비를 부추긴다.


3. 자본가들과 기업, 혹은 국가와 시장의 입장과는 다르게 많은 노동자들은 일과 노동이 재미없고, 지겹고, 힘들고, 하기 싫은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베컴'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베컴이 현역으로서는 마지막으로 은퇴경기를 치르는 장면이었다.


<많은 운동선수들이 그런 것처럼 은퇴 전에서 베컴도 벅찬 감격과 회환과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베컴도 그냥 노동자로서 자신의 노동을 마무리하는 은퇴를 하는 것인데 왜 그는, 혹은 다른 많은 운동선수들은 은퇴할 때 눈물을 흘릴까? 축구를 그만두면서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어서는 아니다. 심지어 베컴은 축구선 수로뿐 아니라 셀럽으로도 너무도 유명한 사람이라 축구를 그만두고도 다른 것들을 통해서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답은 간단하다. 베컴이 다른 운동선수들과 차원을 달리하는 유명인이지만 그도 다른 운동선수들처럼 그의 본업인 운동, 즉 축구에 중독되었고 거기서 오는 도전과 성취, 심지어는 실패와 고난마저도 거기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축구가, 특히 베컴 정도가 치르는 프로경기와 국대급 경기는 선수로서도 엄청난 아들레날린을 뿜어대는 '노동'임은 자명하다. 축구라는 운동이 주는 불확실성, 명확히 갈리는 승패, 새로운 도전 등, 험난한 훈련과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는 승부에 베컴 역시 중독되었던 것이다. 그가 현역선수로서 은퇴하고 다른 무엇을 해도 축구가 주는 '강한 자극, 도전, 성취'를 축구만큼 느낄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은퇴를 아쉬워하고 슬퍼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하는 '노동'을 더 이상 못하게 되고 은퇴할때 베컴처럼 아쉬워서 눈물이 날까?


20년 정도의 직장생활과 사업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나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별 생각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경력이 쌓이고 일을 계속 하면서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어렴풋이 내가 하고 있는 '노동'과 '일'이 유한한 권리이고 감사한 기회이면서 축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때쯤 부터 조금씩 출근길에 혹은 야근을 하면서 행복함을 느꼈다. 사업을 하고 있는 지금은 출근을 하고, 아니면 집에서 일하는 매일매일이 고맙다. 내가 지금 하고 '일'은 나에게 주어진 '유한한 자격'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마도 오늘도 직장으로 출근하기 싫어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그것은 사실상 오해와 몰이해에서 생긴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내가 운동선수가 아니라 나의 '더 이상 노동할 수 없음, 즉 은퇴'는 갑작스럽거나 파격적인 결정으로서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분명히 슬퍼서 울 것같다. 은퇴를 하고 무엇을 하든 '일'만큼 꾸준하게 재미있는 것이 없을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일'이 재미있는 이유는 그것이 불확실하고 스트레스를 주며, 도통 성과가 나지 않고 때로는(혹은 자주) 실패하기 때문이다. 베컴이 축구경기를 하면서 거기에 중독된건 그가 매번 이기지도 않았고 때로는 선수로서 고난과 실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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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은퇴를 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감독 '알렉스 퍼거슨'의 은퇴식을 찾아보았다.



<알렉스 퍼거슨의 감독으로서의 마지막 경기… 는아니고 아무튼 알렉스 퍼거슨이 나온 사진>


그는 울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그가 관리직이거나 육체노동자가 아니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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