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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액션핏 박인후 Oct 22. 2023

외환딜러들이 국가와 시대의 아방가르드인 이유

돈계산하는 사람도 어쩌다 보면 시대의 아픔을 먼저 겪는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았지만 그중에는 대표적으로 '암벽등반가', '엘리베이터 수리공', 그리고 '외환딜러'가 있었다.


1. 아방가르드, 맨 앞줄에 선 사람들

'아방가르드(Avant Gard)'는 불어다. 영어로는 'Advanced Guard', 즉 전쟁이나 시위에서 맨 앞줄에 선 사람들을 말한다. 나폴레옹 전쟁시절, 러시아 혁명, 그리고 현대에는 68 혁명에서 맨 앞줄에 선 지식인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현대에서 만든 중형차 '아반떼'란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아방가르드라는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경우는 패션이나 예술에서인데 보통 한자 그대로 가져와서 '전위적'이라는 말이다. 보통 난해하고 혁신적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늘 그렇지만 얼마 전에는 개그프로에서 많이 쓰였던 표현이기도 하다.


2. 을지늑약과 황현

1905년 조선이 일본에 넘어가면서 나라가 망했다. 일본이 2차 대전 항복선언을 했을 때 일본의 많은 군인들과 일반인들도 자결을 했다. 어른이 되고 한참이 지나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나라가 망했을 때 자결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황현의 초상화, 그림처럼 그는 사시였고 그래서일까? 남들과 다르게 시대와 국가의 아픔을 혼자만의 시각으로 먼저 보았다>


황현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조선이란 나라가 폭망각이라지만 망국에 선비하나 자결하지 않는다면 쪽발리지 않겠냐'라고 하고 정말 독약과 함께 목숨을 끊었다.


2.IMF시절, 환율 차트를 보고 울어버린 외환딜러들

예전에 어디서 본 글인데 IMF외환위기 가 터졌을 때 외환딜러들이 가장 먼저 나라가 망하는 걸 알고 진짜 말 그대로 '울었다'는 글이 있었다. 당시 800원 하던 원달러 환율이 2000원을 넘나드니 가장 먼저 당시 을지로인가 모여서 일하던 여러 회사의 외환딜러들은 망국의 현장을 무기력하게 목도하던 황현의 심정이 된 것이다. 딜러 중 누군가가 먼저 울기 시작했고 곧 사무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울음소리와 원달러 거래를 하는 클릭소리만 나는 97년의 어느 사무실이 머리속에 그려졌다.


그 글을 보고 나는 언젠가 외환딜러가 되고 싶었다. 외환딜러라는 직업이 뭔가 '당시 시대와 국가의 아방가르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환딜러들은 하루에 1조 이상의 금액을 거래한다. 사실 이 스펙터클함도 내가 외환 딜러가 되고 싶은 이유 중 하나였다.


외환딜러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외화, 주로 원달러 환율을 주로 보는 일을 하게 되었고 지금 회사에서도 대부분의 매출이 외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환율추이를 꾸준히 보고 있고 최근의 원달러 급등 현상에 당연히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도 여러 가지 면에서 외환딜러들이 하는 일이랑 비슷한 일인 거 같다.

<지난 60년의 환율 그래프, 현재 환율은 역대 3번째로 높다>


환율이 오를 때마다 복잡한 마음이 든다. 이것은 5천만 국민 대부분에게 고통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금의 환율 급등은 수출급등을 동반하지도 않고 글로벌한 현상도 아닌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원화 약세 현상이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역대 세번째로 높은 1350 원을 넘나드는 이 시점에서 을지로이든, 여의도이든 외환딜러들은 지금 시대의 아픔을 먼저 느끼고 있을까? 우리 5천만 국민이 이제 들어가게 될 길고 긴, 고통스러운 저평가된 원화의 시대, 마이너스 성장의 터널을 먼저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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