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하지 못할 사람으로 산다는 것

말은 위에서 내려오고, 침묵은 아래에 쌓인다

by 빨간책방

퇴근 후,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불도 안 켰고, 저녁도 거른 채였다.

몸이 많이 피곤하면, 말도 생각도 없이 잠든다.
그날 밤이 그랬다.

20분 정도 잠들었을까.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다.
교장선생님이었다.
졸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러면 선을 넘진 않겠지 싶었다.

“어, 내가 깨운 거 아니야?”

자는 걸 알면서도 한 말이었다.
그가 무리한 부탁은 안 하겠거니 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진 말은 이거였다.
“OO까지 태워다 줄 수 있나?”

OO은 왕복 30분이 넘는 동네다.

하지만 그의 부탁은, 마치 몇 분이면 될 일처럼 가볍게 떨어졌다.

속으로 당황했지만,
입 밖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옷을 갈아입으며, 이게 뭐지 싶었다.


우리는 같은 연합 관사에 산다.
그날 저녁, 내 차가 주차장에 있었다.
그는 그걸 봤을 것이다.
그래서 전화했을 것이다.

가장 가까워서가 아니라,
지금 이용 가능한 자원이 보였고
그게 나였을 뿐이다.

택시를 부를 수도 있었고,
차를 갖고 있는 다른 교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아무 말 없이 차를 꺼내 줄 사람, 저년차 남성 교사.

그는 내가 그 조건에 맞는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게 더 불쾌했다.


차로 내려가 보니, 뒷좌석엔 짐이 널브러져 있었다.
급히 치웠다.
그 사람이 탈 자리니까.

‘내가 왜 지금 이 사람을 위해
이걸 이렇게 바쁘게 치워야 하지.’

그 순간부터, 기분이 상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긴장했다.

“어디까지 모셔다드리면 될까요?”
내가 물었다.

“예전처럼, 그 집으로 가지.”

목적지도 정해져 있었다.


가는 길, 나는 말을 조금씩 붙였다.

“요즘에도 운동하세요?”

“근처에도 체육관 괜찮은 곳 있던데요.”

그냥 조용히 있기엔
내가 불편하다는 걸 들킬 것 같았다.
그의 권위에 내가 반감을 갖고 있다는 인상이
남는 게 싫었다.


그는 말했다.
자기도 자고 있었는데,
교육장에게 연락이 왔다고.

지역교육지원청의 수장이다.

우리 학교의 교장은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사람이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망설임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날 밤에도,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작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몸살로 회식에 빠지겠다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그럼 나 좀 태워다 줘.”

왕복 40분.
운전했고, 돌아왔고,
그날도 말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계속, 묻지 않았다.


학교에서 ‘부탁’은
아래를 향해 내려간다.

거절하기 어렵다는 걸
서로 알고 있으면서도,
그 말은 계속 ‘부탁인 척’ 한다.

말을 꺼낼 수 있는 사람과
말을 삼켜야 하는 사람.
그 차이가 위계다.


나는 그날, 거절하지 못했다.
그게 분했다.

하지만 더 분한 건,
그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본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이 조직에 너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폭력이었다.


이건 그냥 운전 이야기가 아니다.
말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방식,
그리고 그 아래의 침묵을
누군가는 너무도 당연하게 소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건 누군가가 싫다고 말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 아니다.
애초에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가 있었다.

‘부탁’이라는 말에 감춰진 위계.
그 아래에서 예의를 가장한 복종이
오래도록 쌓이고 있었을 뿐이다.


지금은
구조가 어떤 방식으로 일상 속에 스며드는지
기록해두고 싶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구조를 기록하는 일이다.

무리한 부탁을 받았던 밤,
그 말이 오랫동안 얼마나 익숙하게 내려왔는지,
그 침묵이 어떻게 강요되었는지를
그대로 써두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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