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쏟아내는 아이 앞에서
교사로서
말해선 안 되는 감정이 있다고 배웠다.
어떤 아이는 좋고,
어떤 아이는 밉다는 감정.
나는 아이들을 공평하게 바라보려 애쓰지만,
마음은 생각보다 빠르고, 정직하게 반응한다.
이성은 균형을 말하지만,
감정은 언제나 먼저 움직인다.
수업 시간 내내 감정적으로 기대는 아이가 있다.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고,
사소한 일에도 나의 확인을 반복해서 구한다.
친구가 도와주려 하면 날카로워지고,
오직 권력적 우위에 있는 나에게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 모습은 마치,
늘 긴장 속에 살아가는 아이가
스스로를 방어하는 방식처럼 느껴진다.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나는 종종 그 아이의 엄마를 떠올린다.
예민하고 억눌려 보이던 말투,
방어적인 태도, 그리고 감정의 가장자리에서 늘 날이 서 있던 모습.
나는 그 엄마를 통해 그 아이를
단정 짓고 싶진 않지만,
그 불안의 결을 마주할 때마다,
그 둘의 그림자가 겹쳐 보일 때가 있다.
처음엔 그 마음이 안쓰러웠고,
무언가를 자꾸 확인받으려는 그 모습이
어디선가 불안을 안고 있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반복이 점점 더 잦아지고,
내 말과 시선에 끊임없이 매달리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나는 점점 그 아이의 존재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귀찮다는 감정보다는,
내가 주는 관심이 충분하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은 그 기운이
나를 조금씩 지치게 만들었다.
내가 정성을 들일수록,
내 마음은 조금씩 공허해졌다。
반대로,
어떤 아이는 사소한 일에도 웃고,
느낌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말로 표현한다.
“선생님, 이거 재밌어요.”
“오늘 수업 너무 좋았어요.”
그 짧은 말 한마디에
나는 자연스레 마음이 풀리고,
쌓아뒀던 경계가 느슨해졌다.
그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어딘가 모르게 편안하고 가볍게 느껴졌다.
아마 그 아이는
누군가에게 꾸준한 애정을 받아온 경험이 있는 아이일 것이다.
그래서 나와의 관계에서도
불안보다는 신뢰에 가까운 감정이 먼저 작동한 것 같았다.
만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출장을 다녀오면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라며
웃으며 달려온다.
이전 담임 선생님이 더 좋다고 말하면서도,
지금의 나와도 자연스럽게 감정을 연결하는 방식이
익숙하고, 건강해 보인다.
혼나는 순간에도 쉽게 주눅들지 않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을
이미 내면 어딘가에 갖고 있는 아이.
나는 그런 아이 앞에서
조금 덜 긴장하게 되고,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마주 앉게 된다.
이런 차이를 느끼며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불안이 큰 사람을 힘들어한다.
그 불안이 내 감정처럼 느껴지고,
나는 쉽게 그 감정에 전염된다.
그리고 감당하지 못할 때,
나는 그 아이에게서 멀어지고 싶어진다.
“밉다”는 감정은
정말 그 아이 때문일까?
어쩌면 그건,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내 감정일 수 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과
멀어지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나는 매번 어정쩡하게 서 있다.
나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먼저
나 자신을 더 잘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어떤 아이가 밉다는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그 감정의 뿌리를 들여다보는 것부터.
그게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첫 걸음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공감받기 위해 쓴 고백이 아니라,
내 감정을 나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한 기록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와 비슷한 감정을 품은 누군가가
이 문장들 앞에서 조금쯤 안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