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라는 행위, 익숙하지 않은 따뜻함
나는 연구자다. 논문을 쓰다 보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컴퓨터를 켜고 혼자 이것저것 끄적이다 보면, 잡다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자주 떠오르는 건 내 일상이다. 동네에서의 일상을 연구하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삶을 돌아보는 일이 습관처럼 따라붙는다. 그러다 보면 연구를 넘어, 그냥 내 일상을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도 생긴다.
요즘은 신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한때는 신앙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아니 그런 거리조차 없었다), 최근 들어 교회도 가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번 써보려 한다. 무신론자였던 내가 시작한 작은 신앙 (탐구) 생활을.
신앙이라니. 나를 아는 누구라도 피식 웃을지 모른다.
나는 늘 누군가를 위하기보다는 내 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다.
돌아보니 신앙을 가진다는 건 그 자체로 어떤 이미지와 기대를 동반하는 듯하다.
초등학교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가 6년 내내 교회에 같이 가자고 설득하다가 결국 포기한 일도 있었다. 일요일 아침마다 걸려오던 전화가 아직도 떠오른다. 지금은 예루살렘에서 유학 중인데, 가끔 통화를 해도 끝맺음은 늘 같다. “교회 가자.”
나에게 신앙, 그리고 교회는 늘 비효율적이고 무용해 보였다. 특별히 하는 것도 없어 보이는데 거기에 시간을 쓰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차라리 침대에 누워 엄지손가락으로 인스타그램을 넘기는 게 더 낫다고 여겼다. 한 주에 겨우 이틀 쉬는데, 그중 하루를 교회에 바친다?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신은 어디에 있는가. 내 삶의 모든 것은 언제나 나의 선택과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믿어왔다.
그런 내가 신앙심에 대한 글을 쓰다니, 내가 봐도 어색하고 우스운 일이다.
신앙에 언제 관심이 생겼나 돌이켜 보면, 작은 한식집이었던 거 같다. 사무실 1층에 자리한 한식집, 그곳의 사장님은 지금은 내가 “어은동 엄마”라 부르며 소개하는 분이지만, 처음에는 그저 자주 얼굴을 마주치는 동네 어른일 뿐이었다. 원래 낯을 많이 가리고 필요하지 않으면 먼저 말을 거는 성격도 아니어서 가까워질 계기도 없었다(이제는 엄마아빠 그리고 장모님장인어른을 제외하고 60대 중 내가 가장 애정하는 어른이다). 그래도 1층에서 밥을 자주 먹다 보니 자연스레 인사가 오갔고 조금씩 안면을 트게 되었다. 사장님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식당 곳곳에 놓인 작은 십자가가 눈에 띄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밥을 먹고 계산을 마치는데 사장님이 내게 말했다. “늘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 되길 기도하고 있어요.” 그 말이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나를 위해 기도한다니, 그 마음은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 누군가의 안부를 걱정하는 일, 작은 기도 한마디조차도 점점 사라져가는 지금, 도대체 이런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아마 그때부터 였던 거 같다. 나의 신앙탐구생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