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자리에서 본 교회의 두 얼굴
막상 이것저것 적다 보니, 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급해 자기 전 서둘러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역시 해야 할 일이 많을 때는 딴짓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법이다.
나는 어느 날 ‘연구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살게 되었다.
연구자의 직업병 아닌 직업병(물론 지금은 카페 사장인 척하는 백수지만)은 무언가를 탐구하고 끝없이 사고하는 일이다. 사고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히 ‘왜?’라는 질문을 붙이며 끝말잇기하듯 이어가는 습관에 가깝다. 그런 내게 종교는 하나의 끝말잇기처럼 다가왔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데 모두가 느끼고 믿고 있는 그 무언가에 ‘왜?’라는 질문이 붙었다. 왜 사람들은 신을 믿는가, 그들에게 신은 무엇인가. 그렇게 종교와 신앙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한식집 사장님으로부터 전도 아닌 전도를 받았고 아내가 다녔던 한 도시의 중앙교회를 방문했다. 사실 내게 최초의 교회 경험은 대부분 그렇듯 달란트 잔치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날만은 선명하다. 떡볶이를 사 먹고 선물을 한아름 안아 들고 집에 돌아온 기억, 마치 사냥에 성공한 사냥꾼처럼 부모님께 자랑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교회는 쾌락을 멀리하라고 했지만, 내게 그날은 철저히 쾌락의 시간이었다.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걸 보면 꽤 행복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어른들의 사랑이었다. 교회 아이들을 보면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 요즘의 내 마음처럼, 그때의 어른들도 나에게 작은 기쁨을 쥐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지금까지도 감사한 마음이 남아 있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와 교인들에게서 그런 감각들을 배워왔던 것 같다. 달란트 잔치뿐만 아니라, 교회를 다니는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말이다.
달란트 잔치에 정신이 빠졌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기독교의 구조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중앙’이라는 이름답게 그 교회는 그 도시를 대표하는 교회였다. 주차할 공간이 부족했고 예배당에는 족히 백여 명이 넘는 청년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이방인이었고 하나님과 처음 마주한 자리에서 눈을 마주치기보다는 그 옆의 친구들을 먼저 살폈다. 모두가 즐거워 보였다. 마치 한 편의 콘서트 같았다. 함께 노래하고 앞에서는 율동도 이어졌다. 낯설었지만 생기가 있었다. 요즘 어디서 자기 신념을 담아 노래할 수 있겠는가. 그 대상이 하나님이었기에 더 건강해 보였다. 누군가는 서서, 누군가는 울며, 누군가는 간절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도했다. 예배는 그렇게 끝났고, 이후에는 셀 모임을 하며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함께 기도한 뒤 흩어졌다.
좋았다. 건강해 보였고 꼭 필요해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불편했다.
교회는 하나의 울타리가 쳐진 동산 같았다. 그 안에서는 평온해 보였고 모두가 건강해 보였다. 하지만 교회의 역할은 무엇일까?, 교인의 역할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을 위해 즐겁게 노래하는 것이 전부일까? 잘 모르겠다. 내가 막연히 가지고 있던 교회의 이미지는 경계 밖 사람들의 마지막 안식처, 비빌 언덕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잠깐 경험한 교회는 울타리를 세우는 데 바빠 보였다. 물론 내가 두어 번 경험한 것만으로 교회의 모든 모습을 알 수는 없다. 경계 밖을 향한 활동이 분명히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두어 번 본 내가 느낀 교회의 모습이 그렇다면, 그것 또한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교회를 다니지 않던 어린 시절, 교회가 내게 건네주었던 사랑과 이웃을 향한 감각을 다시금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