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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현 Jul 11. 2023

꼬마소녀에게 나는 어떻게 했어야 하나 (2편)

 서로 마음이 맞는 이야기를 할 때면 사람들은 눈을 마주한다. 눈 맞춤뿐 아니라, 몸의 방향까지도 서로를 향한다. 우리 또한 항상 그래왔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처음 마주하는 이 상황에 우리는 몸의 방향도 시선의 방향도 서로를 향할 수 없었다. 용기를 내서 친구에게 눈길을 돌렸다. 나의 마음을 진심으로 전달하고 싶었다. 하지만 친구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OO아, 삼촌이 솔직하게 말할게? OO이가 방금 한 행동 때문에 삼촌이 마음이 많이 아파. 정말로."

 친구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전히 나를 바라보지도 못했다. 나는 이 친구와 이런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 마음이 정말 아팠지만,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가야 했다. 얼음처럼 굳어버린 이곳에 공기와 우리의 관계를 깨트려야 했다. 아니, 따스하게 녹여야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OO이가 방금 한 행동이 잘못된 행동인 거 알지?"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은 너를 너무 아끼지만 오늘 한 행동은 하면 안 되는 행동이야."

 여전히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그런 친구에게 입으로 듣고 싶었다.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스스로 깨닫고 있기를 바라며. 그래서 다시 물었다.

  "삼촌이 다시 한번 말하는데, 앞으로 다시는 해서는 안될 행동이야. 정말로 알겠으면 삼촌한테 말로 대답해 줄래? 그래야 삼촌이 너의 마음을 제대로 알 것 같은데"

 친구는 '네' 하고는 대답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친구의 표정과 호흡에는 불안감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어린 친구들을 어른들 앞에서 얼마나 더 두렵겠는가. 조금 더 친구가 마음의 불안을 떨치기를 바랐다. 또한 자신이 한 일이 혹여나 부모님 귀에 들어가면 어떡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 또한 우리 매장에 단골이시기 때문에 나와 친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오늘 삼촌이랑 있었던 일은 엄마 아빠는 빼고 우리 둘이 비밀이야. 그 대신에 앞으로 정말로 이런 행동을 안 하기로 약속하면 비밀로 할 거야. 대신에 또 삼촌이랑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삼촌은 비밀을 지킬 수 없어. 알겠지?"

 친구가 대답하는 목소리의 톤이 전과는 다르게 조금은 높아졌다. 역시나 그 부분이 아이에게 있어서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우리는 비밀이 생겼다. 아니, 부모님만 모르는 사실이 생긴 것이다. 사실 많은 고민을 했었다. 부모님께 이 사실을 전하는 것이 아이에게 있어서 조금 더 나은 방향인지, 내가 한 것처럼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게 아이에게 나은 방향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을 뿐이다. 이 친구가 나와의 약속을 지킬 거라는 믿음을 한 번 더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친구에게 약속을 받았다. 우리 매장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러지 않겠다고.


 "OO아, 삼촌이랑 알고 지낸 지가 얼마나 되지? 4년쯤 된 것 같은데, 아마 OO이가 삼촌한테 포켓몬 스티커가 갖고 싶다고 줄 수 있냐고 물어봤으면 더 좋았을 거야. 그게 가장 좋은 방법 같았을 것 같거든? 우리 그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잖아? 다음에도 스티커가 정말 갖고 싶으면 삼촌한테 줄 수 있냐고 물어봐. 그러면 삼촌이 그때 상황 봐서 줄 수 있으면 주고, 안될 것 같으면 못 준다고 정확히 말을 해줄게."

 친구를 보내기 전에 이렇게 말을 해줬다. 나는 이 친구가 자신의 주변에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은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위와 같이 말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이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훗 날 나에게 부탁을 한다면, 나는 역시나 무조건적으로 주지는 않을 거다. 그것 또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확실히 준다고 약속하지 않은 거다. 


 이렇게 대화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친구가 주었던 인형을 다시 돌려주었다. 나에게 미안해서 인형을 줬다는 친구의 말에 그러면 이 인형은 오늘은 안받을거라고 말했다. 나중에 정말로 삼촌한테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선물로 주고 싶을 때 다시 달라고했다. 


 나는 이 친구가 얼마나 그 스티커를 갖고 싶었을지 어느 정도 가늠은 된다. 나도 어릴 때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곤 했었으니까. 그래서 친구의 그 순수한 마음을 최대한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 행동을 모른척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단지 경제적으로만 본다면 그 빵 하나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없어도 된다. 하지만 그 빵 하나는 이 순수한 친구에게는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넘어갈 수 없었다. 


 부디 오늘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 친구가 꼭 조금이라도 변화하길 바랐다. 나의 말과 행동이 맞는 행동인지는 모르겠다. 올바른 어른으로서 행동을 한 것인지도 역시나 모르겠다. 나도 나를 잘 모르고, 나 자신도 인생에서 만나는 일들에 대한 답을 모른다. 단지, 보다 더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고 부족한 점은 반성하고 고쳐나갈 뿐이다. 다음에 조금 더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 친구뿐만 아니라, 나 또한 나에 대해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했을지라도 크게는 같은 배움을 느꼈으리라. 이제 다시 눈과 몸을 마주하며 다시 건강한 우정을 쌓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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