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낭독]01 사투리로 낭독 놀이(음성 포함)

서남 전라도 서사시 조정 시인의 시집 '그라시재라'

by 허배우 actorheo

<아무튼, 낭독> "보이스 에세이"를 시작합니다. 연재하는 글을 소개하는 내용과 책의 일부를 음성으로 들려 드립니다.


<아무튼, 낭독> 그 첫 번째는 사투리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조정 시인의 서남 전라도 서사시 <그라시재라> 낭독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시집은 눈으로 읽기보다 소리 내어 읽을 때 200% 더 맛깔난다.


조정 시인의 서사시 <그라시재라>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129쪽 '딸 이름을 돈 주고 지어'의 한 부분을 소리 내어 읽어 본다.

​"염병은 니가 염병 땜병을 했구만 내 말이 아조 점쟁이 말씀이랑께 성님 저집이서는 월출네 저것이 동티랑께라"


​나의 모국어는 '표준어'가 아니다.

​나는 22년 차 글로벌 IT 기업의 직장인이다. 회사에서의 내 언어는 언제나 '표준'이어야 했다. 보고서는 명확해야 하고, 프레젠테이션은 군더더기 없는 서울말이어야 했으며, 감정은 철저히 배제된 드라이한 톤이어야 했다. 나는 그게 '프로'의 언어라고 믿었다.


​하지만 2003년, 신입사원 연수 시절의 나는 달랐다. 연수 내용 중 회사의 역사를 연극으로 공연하는 과정이 있었다. 나는 내가 맡은 역할의 대사를 전라도 사투리로 바꿔서 무대 위에서 휘저었다.


"아따, 거시기 뭣이 중헌디!" 객석은 뒤집어졌고, 나는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때 내 입에서 터져 나온 사투리는 촌스러움이 아니라, 가장 솔직하고 뜨거운 '나의 영혼'이었다.


2025년, 다시 만난 전라도의 서사시 <그라시재라>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고 말이 없어진 어느 날 밤, 나는 서재 구석에 꽂혀 있던 시집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조정 시인의 <그라시재라>. 서남 전라도의 말들로 엮어낸 이 묵직한 서사시는, 표준어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삶의 비애와 해학을 담고 있다.


​문득 표준어 낭독이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다. 혀끝에 힘을 주고 또박또박 읽는 서울말 대신, 뱃속 깊은 곳에서 툭툭 던지는 전라도 말을 뱉어보고 싶었다.


​"그라시재라 (그렇지요, 맞습니다)."


​이 짧은 다섯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데, 혀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표준어 "그렇습니다"에는 건조한 '동의'의 뜻만 있지만, 조정 시인의 시어인 "그라시재라"에는 '긍정', '위로', '해학', 그리고 '네 맘 다 안다, 산다는 게 다 그렇지'라는 넉넉한 품이 들어 있다.


[만남] 조정 시인님과 함께한 북토크 현장

(존경하는 시인님과 팬심으로 한 컷. 시인님의 따뜻한 미소 덕분에 더 빛났던 날이었습니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블러 처리하였습니다.)


지역의 한 서점에서 만난 그라시재라 시집은 조정 시인의 북토크로 참석으로 이어졌다. 시인님을 직접 모시고 참여자들과 돌아가며 시를 낭독하는 시간. 묵독으로 읽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전율이 흘렀다. 전라도 사람들의 억센 삶이 육성을 타고 공기 중에 흩어질 때, 우리는 모두 '한 식구'가 된 듯한 끈끈함을 느꼈다.


[현장 스케치] 서점 카페, 친구들과 차마 시며 '그라시재라' 낭독하며 웃고 울었던 우리들의 추억

(소중한 지인들의 초상권 보호를 위해 살짝 가렸지만, 하트스티커 뒤로 터져 나오는 '찐 웃음'은 가려지지 않네요.)


낭독의 맛: 함께 읽을 때 터지는 '공명'


​회사에서 팽팽하게 긴장했던 혀 근육이 구수한 사투리 시를 낭독하며 말랑말랑하게 풀렸다. 그것은 낭독이라기보다 그리운 엄마의 밥상 같은 위로였다.


​혼자 읽을 때는 '위로'였지만, 지인들과 함께 카페에서 읽을 때는 '축제'가 되었다. 서로의 억양을 따라 하며 웃고 떠드는 사이, 우리는 낭독이 얼마나 즐거운 '놀이'인지 깨달았다. 사투리에 익숙하다는 것은 문학의 세계를 더 깊이 파고드는 자원이 되었다.


요즘도 자주 퇴근 후 <그라시재라>를 편다.

낮에는 허프로의 언어로 치열하게 싸웠지만, 밤에는 허배우의 언어로 나를 다독인다.


"그라시재라, 오늘 하루도 욕봤소. 징하게 고생했소."


[매거진 예고] 세상의 모든 것을 낭독하는 '아무튼, 낭독' 실험실


​낭독은 혼자 하는 고독한 취미가 아닙니다.

22년 차 회사원, '방구석 허배우'가 제안하는 기상천외한 [낭독 실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순서는 바뀔 수 있어요!

글이 완성되는 순서대로 올릴 예정입니다.


​2화. 딸과 함께 고전을: 사춘기 딸과 읽는 <로미오와 줄리엣>, 세대 차이를 넘는 비극의 맛

​3화. 남편과의 2인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으며 부부 관계의 '기다림'을 배우다

​4화. 동화책 낭독: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동화, 잃어버린 순수를 찾아서

​5화. 영어책 낭독: 토익 점수를 위한 영어가 아닌, 혀끝으로 굴리는 언어의 리듬

​6화. 수필 낭독: 남의 일기를 내 목소리로 읽을 때 찾아오는 공감의 전율

​7화. 일본어 낭독: 낯선 언어의 질감을 입안 가득 느껴보는 미각적 독서

​8화. 가족 낭독: 명절날 TV 대신 책을 폈다, 온 가족이 만드는 거실 극장

​9화. 앵무새에게 읽어주기: 말 배우는 새에게 건네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

​10화. 벽돌책 깨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눈으로 포기한 책을 입으로 완독 하다

11화. 함께 낭독: 드라마 대본 <나의 아저씨>,

인생드라마 속 배우들의 대사를 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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