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머리는 만점인데 눈치는 0점인 당신을 위한 희곡

회사가 나를 '오렌지 껍질'이라 불러도, 나는 내 무대를 지킨다

by 허배우 actorheo

​나는 22년 동안 ‘일머리’ 하나는 자신 있었다. 글로벌 IT 기업의 영업 담당으로서 숫자를 분석하고 유통망을 설계하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2020년 고과 결과를 보고 내 삶의 설계도는 처참히 찢겨나갔다. 승진 누락.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실망감으로 지독한 ‘마음의 탈진’이 찾아왔다.

​마침 코로나 시기, 초등학교 2학년이던 둘째의 미등교 상황은 나를 자연스럽게 육아휴직으로 이끌었다. 사실은 나를 살리기 위한 절박한 도망이었다. 광주 집 거실, 아이의 온라인 수업을 지켜보며 나는 멈춰버린 내 경력을 대신할 산소마스크를 찾아 헤맸다. 그때 만난 것이 낭독, 그중에서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읽어야만 비로소 살아나는 희곡이었다.

희곡 낭독은 나에게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관계는 쌍방이다: ‘조감도’로 설계하는 인생 무대

​휴직 기간 동안 <세일즈맨의 죽음> 속 대사들을 수천 번 읊조리며 나는 깨달았다. 내가 관계에서 길을 잃고 숨이 막혔던 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관계를 입체적으로 보는 ‘디자인 관점’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쇼펜하우어는 그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라고 말했다. 세상은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내 관점이라는 필터를 통해 디자인된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관계는 나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내가 디자인한 세상과 상대가 디자인한 세상이 부딪히는 지점이 바로 '관계'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조감도(Bird's-eye View)’의 시선이다.

무대 한복판에서 감정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극장 천장 위에서 나(Willy)와 상대(Howard),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비즈니스라는 무대 장치를 한눈에 조망하는 것. 이 입체적인 시선이 확보될 때 비로소 우리는 대사 너머의 진실을 읽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

​1인 2역 낭독: 내 안에서 충돌하는 두 개의 세계


​관계를 입체적으로 디자인하기 위해 나는 윌리 로먼과 그를 해고하는 상사 하워드의 대사를 혼자서 번갈아 낭독하기 시작했다.

​하워드가 되어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로 윌리를 밀어낼 때의 잔인함, 그리고 짓밟힌 자존감을 부여잡고 울부짖는 윌리의 뜨거운 떨림. 이 두 목소리를 내 한 몸에서 내뱉는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상처받은 '나'의 억울함에만 갇혀 있던 시야가 무대 전체를 내려다보는 조감도처럼 확장된 것이다.

​이 소름 돋는 신체적 경험은 나를 자연스럽게 ‘세계문학 인물 평론가’의 시선으로 이끌었다. 내 상황을 문학이라는 안전한 연습장에 올려놓고 냉정하게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행간 읽기: 윌리는 왜 '오렌지 껍질'이 되었나?

​하워드에게 내근직을 간청하다 해고당하는 장면을 1인 2역으로 읽으며 나는 스스로를 평론하기 시작했다.

​하워드: (냉정하게) "윌리, 미안하지만 여기엔 자리가 없어."
윌리: (절규하며) "하워드, 사람은 오렌지 껍질처럼 다 까먹고 버리는 게 아니야!"

​낭독을 멈추고 극장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이 장면을 비평해 본다. 윌리는 하워드의 비정함을 탓하기 전에, '회사'라는 무대 장치가 '효율' 중심으로 바뀌었음을 읽어냈어야 했다. 그가 과거의 공로라는 텍스트에만 매달릴 때 하워드는 현재의 가치라는 숫자 너머의 맥락을 보고 있었다.

​이 엇갈린 대사 너머의 진실을 내 목소리로 직접 체감하는 순간, 2020년의 내 승진 누락 역시 '나라는 존재의 실패'가 아니라 '조직이라는 무대의 설계 오류'였음을 깨달았다. 인정하고 나니 비로소 숨이 쉬어졌다.

목소리로 증명하는 변화: 1인 2역의 조감도

​글자로만 전하기엔 부족한, 제가 직접 1인 2역으로 낭독하며 설계해본 그 밤의 목소리를 들려드립니다. 차가운 하워드와 뜨거운 윌리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교차할 때, 나는 비로소 질식할 것 같은 관계에서 벗어나 나만의 무대를 다시 디자인하기 시작했습니다.


[1인 2역 낭독 실황] <세일즈맨의 죽음> - 하워드 vs 윌리


인정의 끝에서 시작되는 개선의 디자인

​인정하고 나니 나만 현역으로 고군분투하는 줄 알았는데, 남편과 아이들도 자신의 무대에서 치열하게 배역을 수행 중이라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표상 속에서 살아가는 동료 배우들임을 깨닫는 순간, 사무실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2022년 12월, 나는 낭독을 통해 얻은 조감도의 시선을 무기 삼아 복직했고, 마침내 2025년에 승진이라는 목표를 이뤄냈다. 그 후 2025년 6월 용인 연수원 승진자 교육 과정에서 만난 이연실 대표님의 강연은 내게 마지막 확신을 주었다.

"내 처절했던 탈진과 부활의 기록을 세상에 내놓아야겠다."

​나는 여전히 회사인간이다. 하지만 이제는 타인의 대본에 휘둘리는 조연이 아니다. 희곡 낭독이라는 숨구멍을 통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매일의 무대를 직접 디자인해 나가는 노련한 주연 배우다.

​[다음 무대 예고] 당신을 다시 주인공으로 세울 4번의 커튼콜

​희곡으로 노는 법은 아직 무궁무진합니다. 이어지는 무대에서 당신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으세요.

무대 2. 발성 놀이: "가면 뒤의 진짜 목소리 찾기" - 내 몸이라는 악기를 튜닝하는 법

​무대 3. 역할 바꾸기: "비프의 눈으로 엄마를 성찰하다" - 관계의 자리를 바꿔보는 용기

​무대 4. 내면아이 치유: "벽장 속 소년과 윌리의 조우" - 가장 깊은 곳의 나를 안아주기

​무대 5. 결말 다시 쓰기: "내 인생의 시나리오는 내가 쓴다" - 우아한 퇴근길을 위한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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