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징허게 애쓰시요잉” 22년 차 직장인의 회식 반란기(음성 포함)
누가 시킨 건 아닐 텐데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자리가 불편해진다.
[오늘의 직장 상황]
부서장 자리가 상석인 건, 이해한다.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다음부터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한 직원이 늘 자리를 정리한다.
부서장 옆에는 본인이 앉고, 몇몇 사람들의 자리까지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처음엔 그냥 그런가 했는데 이게 매번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어딘가 정해진 규칙처럼 느껴진다.
물론, 어색한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는 말을 꺼내고 흐름을 만들어야 하니 그 사람이 분위기를 잡아주면 편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더 애매하다.
고맙기도 하고, 어딘가 묘하게 불편하기도 하다.
[불편함의 정체 : 질서를 만드는 척하며 중심을 가져가는 사람]
오랜 시간 지켜보다 보니 그 불편함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어색한 공백이나 침묵, 눈치 싸움을 견디지 못해 먼저 구조를 만들어버리는 ‘질서 창조자’ 타입이다. 스스로는 “내가 나서서 좋은 일을 했다”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배려형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늘 본인의 자리를 가장 눈에 띄는 부서장 옆자리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복잡한 심리가 얽혀 있다. 상황이 자기 손안에 있어야 안심하는 통제 욕구, 그리고 굳이 말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포지션을 선점하려는 인정 욕구. 조직의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읽어내는 눈치 빠른 전략형인 셈이다.
그래서 이 상황은 완벽한 딜레마다.
겉보기엔 배려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 덕에 누군가는 편해지니까 명확한 잘못이라 할 수도 없다. 본인조차 “내가 분위기를 살린다”라고 생각할 텐데, 여기서 불만을 제기하면 나만 호의를 꼬아보는 예민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결국 내가 느낀 찜찜함은 단순한 자리 문제가 아니라, “누가 이 흐름을 쥐고 흔드는가”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공식적인 규칙은 없는데, 늘 누군가의 의도대로 똑같은 결과가 세팅되는 그 불쾌함 말이다.
[희곡 한 장면 낭독 : 상상 속에서, 나는 이렇게 말해본다]
장소: 희미하게 깜빡이는 형광등 아래, 고깃집 회식 자리.
상황: 테이블 세팅이 한창이고, ‘그 직원’이 사람들의 자리를 정리하고 있다.
그 직원
자자, 부서장님은 저쪽 안쪽 상석에 앉으시쑈잉.
지는 요짝 옆에 앉을랑께.
김 프로님은 저~쪽으로—
나
(겉옷을 벗다 멈춘다, 가볍게 웃으며)
아따, 이 프로님. 혹시 오늘 회식 자리 배치도 엑셀로 미리 돌려보셨소?
왜 나만 메일을 못 받아부렀는갑네잉.
그 직원
(당황하며)
오메? 아니여라… 그 거시 아니라… 걍 다덜 핀허게
나
(조용하지만 또박또박, 테이블을 바라보며)
회식 헐 때마다 자리를 딱딱 정해주던디,
회사에 뭣이 공식 룰이라도 생겨브런갑다 했지라.
(순간 테이블에 정적. 고기 굽는 소리만 들린다.)
나
(미소 지으며, 여유롭게)
아따, 징허게 맨날 자리 신경 쓰시니라 애쓰시요잉.
오늘은 다덜 진짜로 핀허게 앉으블랑께.
프로님도 걍 핀헌 데 암디나 앉으씨쑈.
(나는 천천히 의자를 끌어 앉고, 잠깐의 어색한 침묵 후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짧은 회복과 여운]
현실의 나는 저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직원의 행동이 틀렸다고 대놓고 말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엔 마음 한구석이 뻣뻣해졌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의 그 복합적인 욕구 덕분에 회식 자리가 조금 덜 어색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분위기를 주도하고, 누군가는 그 분위기 속에서 편해진다.
어쩌면 회사라는 곳은 그런 역할들이, 사람들의 그 다양한 욕구들이 뒤섞여 굴러가는 거대한 무대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기어이 무대의 중심(상석)을 차지하려 애쓰고,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떡을 먹으며 하루를 버티는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퇴근 후 9시,
나는 방구석 배우가 되어 상상 속 무대에서만큼은 통쾌하게 딴지를 걸어본다.
현실의 나를 다그치는 대신, 내 안에서 시원하게 대사를 뱉어보는 다른 선택을 연습해 본다.
그리고 이 짧은 낭독으로,
오늘보다 조금 덜 답답한 마음으로 잠들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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