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글자 책으로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담당 편집자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낮에는 회사원으로 일하고, 밤이 되면 희곡을 소리 내어 읽는 평범한 직장인 ‘허배우’입니다.
얼마 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독자 인터뷰이 모집 공고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이 있었습니다.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입니다. 제게 이 작품은 단순한 고전이 아니라, 오래 기업 영업의 세계를 버텨온 사람으로서 깊이 공명하게 되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20년 넘게 영업 현장에서 일해왔습니다. 실적의 압박을 견디고, 자존심을 접어가며 관계를 만들고, 하루하루를 통과해 왔습니다. 그래서 윌리 로먼의 비극은 멀리 있는 허구가 아니라, 오늘도 출근길에 마주치는 현실처럼 다가옵니다. 특히 늙고 소모된 뒤에도 끝내 인간으로 존중받고 싶어 하는 그의 절규는, 오래 일해본 사람일수록 더욱 아프게 읽힙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자주 펼쳐 소리 내어 읽습니다. 윌리의 대사를 읽다 보면 낮 동안 눌러두었던 감정이 비로소 밖으로 나오는 느낌을 받습니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제게 감상을 위한 책이 아니라, 하루를 버텨낸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절실한 바람이 생겼습니다. 바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번 《세일즈맨의 죽음》이 큰 글자책으로도 나오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마흔을 넘기고 보니, 종일 문서와 화면을 들여다본 눈으로 밤에 다시 책을 읽는 일이 점점 버거워졌습니다. 특히 세계문학전집의 작고 빼곡한 활자는, 이 작품에 몰입하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눈에 큰 부담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이 가장 절실한 독자들은 오히려 이런 작은 글씨를 힘들어하게 된 중년의 직장인들 일지 모릅니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청춘의 독서 목록에만 머무는 작품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겪어본 사람들에게 더 깊이 닿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춘과 체력을 일터에 바친 뒤, 퇴근 후에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수많은 ‘윌리 로먼’들에게는, 찡그리지 않고 읽을 수 있는 크고 편안한 활자가 필요합니다.
큰 글자책은 단순히 글자 크기를 키운 판형이 아니라, 한때 열심히 읽던 독자들이 다시 문학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다정한 문턱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세일즈맨의 죽음》을 큰 글자책으로도 만나볼 수 있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출판사 메일함 대신 이곳에 편지를 띄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화면 너머에서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이 글에 고개를 끄덕일, 또 다른 수많은 ‘윌리 로먼’들의 마음을 함께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 명의 독자가 보내는 조용한 메일은 쉽게 묻힐지 모릅니다. 하지만 퇴근 후 이곳에 모인 우리들의 공감이 더해진다면, 그 바람은 편집자님께 조금 더 크고 묵직하게 닿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책이 나온다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다시 책장을 펼치고, 윌리 로먼의 슬픔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이전보다 더 또렷한 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배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