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희곡 처방] 밥은 먹고 다니냐 (음성 포함)

다 큰 아이와의 거리가 멀어졌다고 느낄 때

by 허배우 actorheo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우당탕 달려 나와 품에 안기던 작은 몸들이 있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어주던 그 시절, 우리는 아이들에게 의심할 여지없는 영웅이자 거인이었다.


하지만 20년 넘게 거대한 일터의 톱니바퀴로 구르며 치열하게 버텨온 지금, 거실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머리가 굵어진 아이들은 부모의 말에 짧게 대답하거나, 이내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밖에서는 실적과 평가라는 차가운 잣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데, 집에 돌아와서는 닿을 수 없는 섬처럼 멀어진 아이의 뒷모습에 또 한 번 무너져 내린다. ‘내가 알던 그 다정했던 아이가 맞나’,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겉돌게 되었을까.’ 서운함과 미안함이 뒤섞인 헛헛함에 닫힌 방문 앞을 서성이다 발길을 돌리는 날이 잦아진다.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 속 윌리 로먼도 그런 사람이다. 두 아들 비프와 해피에게 한때 우상이었던 그는, 평생을 바친 회사에서 밀려나고 늙고 지친 뒤에는 아들들에게조차 부담스럽고 낯선 존재가 된다.


그 서글픈 간극 앞에서 아내 린다는 아들들을 향해 절박하게 말한다.


“이 아버지가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라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네 아버지는 한 인간이야.
그리고 지금, 너무나도 무섭고 외로운 일이 이 사람에게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 관심을 가져줘야 해. 주의를 기울여 줘야 한다고! 늙은 개처럼 무덤으로 굴러 떨어지게 내버려 둬선 안 돼.”


이 절규는 어쩌면 오늘도 지친 몸으로 퇴근하는 많은 부모들의 속마음과 닮아 있다.


“나 요즘 좀 외롭다.”
“많이 지쳤다.”
“너희와 예전처럼 다정하게 얘기 나누고 싶다.”


그 말을 꺼내기에는 괜히 멋쩍고, 자존심도 상한다. 행여나 다 큰 아이들에게 짐이 되고 잔소리꾼처럼 보일까 봐 마음을 삼키다 보면, 서로의 거리는 조금씩 더 멀어진다.


그래서 오피스 드라마 테라피스트 허배우가 나섰다. 부모가 직접 말하기엔 쑥스러운 마음을, 린다의 묵직한 대사에 담아 대신 낭독한다. 영웅의 망토를 벗고 그저 지친 한 사람으로 서 있는 당신의 마음을, 명작의 문장이 조용히 전해줄 것이다.


[오늘의 희곡 처방] 밥은 먹고 다니냐

민음사 《세일즈맨의 죽음》 63,64,65쪽 중

린다(엄마)가 윌리(아빠)의 상황을 아이들에게 대변하는 대사를 낭독해 본다.

[허배우의 처방전]
오늘 저녁, 다 큰 아이와의 카카오톡 대화창을 조용히 열어보자.


길게 설명하지 말고, 이 낭독이 담긴 브런치 글 링크를 무심한 듯 툭 보내보면 어떨까.


“오늘 우연히 들었는데, 연극 대사가 참 좋네. 밥은 먹고 다니냐.”


때로는 잘 만들어진 희곡 한 편과 누군가의 빌린 목소리가, 백 마디 말보다 더 깊게 닿는다. 굳게 닫힌 아이의 방문을 열게 하는 건 거창한 고백이 아니라, 이런 짧고 서툰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오늘 밤에는 쑥스러움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에게 먼저 짧은 안부를 건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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