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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슬기 Sep 13. 2022

취미는 시간 여행

오늘도 세상이 허락한 유일한 타임머신을 경험한다.




오늘은 2001년도 8살이었던 나로 돌아가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관람했다.






 우리에게는 각자만의 세월이 있다. 수많은 세월 속에는 나와 함께한 장소, 물건, 음식, 노래, 냄새와 같은 온갖 기운들이 내가 보낸 과거와 지금의 나를 이어준다. 잠실에 있는 롯데월드에 가면 스물세 살의 나로 돌아가 롯데월드 신입 캐스트의 입문 교육을 받는다. 때가 묻은 아이보리색의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으면 재작년의 나로 돌아가 속초 여행을 빛내 줄 새하얀 운동화의 끈을 묶는다. 엄마가 만들어 준 계란찜을 한술 뜨면 초등학교 일 학년의 나로 돌아가 등교하기 전에 자주 계란찜과 밥을 말아주던 할머니에게 밥투정을 부린다. 버즈의 겁쟁이란 노래를 들으면 초등학교 오 학년의 나로 돌아가 버디버디 미니홈피에 넣을 배경음악을 결제한다. 공동 화장실에서 나는 방향제 냄새를 맡으면 중학교 이 학년의 나로 돌아가 만화책 방에서 같은 냄새를 맡으며 오늘의 신간을 살핀다.



 어쩐지 내 방에는 잡동사니가 한가득인데, 오래된 물건을 버리는 일에 서툰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된 내 방의 물건들은 한때 나의 주목을 받았거나 내가 원해서 함께 하기를 결심한 세월일 것이다.

 생일 날에 받았던 케이크 상자가 예쁘다며 보관했던 나는 미루고 미루다 반년이 지나서야 상자를 버렸다. 상자를 버리며 함께 했던 케이크의 달달함과 꺼진 초에서 피어올랐던 아련한 향을 맡았다.

 ‘케이크 위에 올려진 딸기 맛있었는데….’






 잡동사니 사이로는 나름의 사유가 담긴 각별한 사진들이 여러 군데 널려있다. 가장 눈에 띄는 사진은 엄마다.

 엄마는 휴대폰으로 촬영한 사진이 마음에 들 때마다 인화 작업을 마친 실물의 사진으로 보관하길 바랐다. 나는 직접 인화가 가능한 포토프린터를 꺼내 들고 그녀의 추억 보존을 거들었다. 헤어진 연인에게 받았던 포토프린터를 사용하다가 모든 것이 서툴렀던 스물 네살의 나로 돌아가 그녀와 열렬한 사랑에 빠져본다. 동시에 실물의 사진을 간직하게 된 엄마는 이따금씩 사진에 담긴 날들을 회상하며 그날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사진 속 엄마의 엄마가, 즉 나의 할머니가 엄마를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에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 방에도 걸어두고 싶어 한 장 더 인화를 마치고 그녀들의 지나간 시절을 감히 간직해 본다.






 엄마의 엄마인 나의 할머니는 1922년 생으로, 1972년도 무렵에 송파구 마천동으로 이사를 왔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마천동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자 지금까지 내가 살고 있는 동네다. 이십 팔년의 세월을 함께한 만큼 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다. 마천동에서 할머니와의 기억이 가장 깊은 장소는 내가 고등학교 일 학년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가장 뻔뻔하고 미숙했던 나와 포근했고 너그럽던 할머니가 동심협력하며 위태롭고 아름다운 날들을 함께 보냈던 장소다.



 그 집을 다시 찾은 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집에 가는 버스에서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친 내가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게 됐는데, 평소와 달랐던 귀갓길에서 우연히 그 집 앞을 지나치게 된 것이다. 할머니와의 어렴풋한 기억에 이끌려 집 앞을 서성이다가 그녀가 많이 보고싶은 그리운 마음에 계단을 오르게 됐다. 내가 살던 이 층 창문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음을 짐작했다. 한 눈에 봐도 의심스러운 외부인의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옛 집에 침입했다. 그 집을 떠난지 십년이 넘는 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속 집과 지금의 집 모습은 거의 변함이 없어 보였다.







 가장 먼저 계단 난간에 있는 스테인리스 손잡이가 눈에 띄었다. 몇십 년 동안 주민들의 몸을 지탱해 주었을 손잡이는 이미 많이 낡아 은색의 빛이 대부분 소실돼 있었다. 할머니는 오른손 중지에 금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난간 손잡이를 움켜쥘 때마다 반지와 손잡이가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두 금속의 마찰 소리는 간격이 일정했고 차분했다. 어린시절의 나는 할머니의 발걸음을 추측하게 만들어 주었던 그 소리를 좋아했다.



 할머니의 소리를 따라가다 이 층 현관문을 마주했다. 역시나 내가 살던 당시 그대로의 현관문이었다. 유독 편했던 할머니에게 잘 삐치거나 응석을 부리곤 했는데, 어린 반항심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언제나 현관문이었다. 세차게 닫을 때 나는 철제 현관문의 소리는 오 층의 건물 옥상 밖에서도 들릴 만큼 세고 큰 소리를 냈다. 하루는 지나치게 세게 닫은 현관문의 소리가, 할머니의 심장에 무리를 주진 않았을까 심각하게 걱정됐다. 그날 이후로 내 화풀이 대상에서 현관문은 제외됐다.



 난간 손잡이를 만나 할머니의 소리를 들었고, 현관문을 만나 응석받이의 어린 나를 만났다. 현관 밖 베란다에서 할머니와 함께 키웠던 병아리도 만났다. 폐지나 공병 따위를 파는 것이 재밋거리였던 할머니를 위해 소주병을 두고 갔던 앞집 할아버지도 만났다. 무엇보다 그 모든 중심에 자리 했던 할머니를 만났다. 지나치는 과거의 집 앞이 조각판이었다면 계단을 오르며 만났던 할머니의 흔적은 퍼즐조각이 됐다. 우연히 재회한 과거의 집에서 어쩌면 영원히 만날 수 없을지도 몰랐던 나와 할머니의 조각들을 되찾은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구석구석에서 지나간 세월을 담았다.










 그 시절이 좋아서 그 기억들이 좋아서 이따금씩 유심히 살핀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잊고 있었던 내가 되어 시간 여행을 다녀오곤 한다. 그리운 이들을 다시 만나고 싶을 때, 그들과 함께 했던 장소와 함께 들었던 노래와 함께 주고받은 모습들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다. 흘러간 세월이 담긴 모든 것을 꼼꼼히 보고 있으면 밀렸던 일기도 다시 쓸 수 있다.



 세상이 허락한 유일한 시간 여행은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아닐까. 먼 과거의 사람들은 기억의 한계를 깨닫고 동굴의 벽에 문자나 그림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들의 간절한 마음과 잃어버린 소중한 기억을 알고 있을 세상에게 세월의 자취를 남기며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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