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롭다

허상을 향해 나아가자

by 개세기

푸른 초원 속 제주도의 말을 보며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시원한 바람,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하늘.

그 안에서 풀을 뜯는 말들은 유난히 자유로워 보였다.


제주는 내게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이미 충분히 자유로운 상태였다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 할 수 있었고,

원하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실제로 원하던 자유를 찾아 제주까지 왔다.

그런데도 왜 나는 그동안

스스로가 자유롭지 않다고 느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초원 속 말들은 정말 자유로울까?

마굿간의 말들보다 약간 더 넓은 공간에 있을 뿐,

결국은 주어진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 아닐까.


어쩌면 그들 역시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또는 자유롭지 않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처음으로 의문이 생겼다.

자유란 대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늘 자유를 갈망해왔다.

제주에 오기 전에도,

사실은 자유로운 지금도.

여전히 자유를 원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걸까?

나는 언제나 자유로운 상태였음에도

왜 그동안은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꼈으며

머나먼 섬나라에까지 와서야

내가 이미 자유로운 상태라는 걸 깨달았는가?


어쩌면 자유는

허상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 속 고뇌와 집념, 자극과 약간의 긴장감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마치 그 개념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껴지게 하는 것.


돌이켜보면 인간은 늘 허상을 쫓아왔다.

볼 수도, 닿을 수도 없는 신을

수 많은 이들이 숭배하고 있으며,

같은 재질의 옷도 브랜드에 따라

5만원이 50만원이 되기도 한다.

왜 우리는 그것을 그토록 바라게 되는지.


혹시 인간의 존재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쫓기 위함일까?


그렇다면 내게 그 이름은 ‘자유’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결코 가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원하고

쫒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이 사실이 절망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해답 중

하나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조금 유쾌한 기분이다.


어쩌면 인간은

허상을 향해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존재.

아니, 더 나아가

인간 자체가 하나의 허상일지도 모른다.


지금

초원 속의 말 한 마리가

막 바다로 한 걸음을 내딛은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