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할머니께서는 여덟 남매를 출산하셨다.
그중, 전쟁통과 피난생활,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안타깝게 딸 하나를 잃고, 살아남은 일곱 남매를 가까스로 지켜내셨다.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일곱 남매의 성격은 단 한 명도 같지 않았다. 남자 둘, 여자 다섯, 그들은 일곱 빛깔 무지개 같은 다양함으로, 각자 매우 다른 일곱 방향으로 자랐다.
제일 큰 이모는, 올케어를 받았던 부유한 어린 시절 덕택에, 막내나 다름없는 성격. 그리하여 보드랍고 고운 일 외에는 관심도, 모험심도 발휘하지 않는다. 자유분방한 예술가적 기질을 타고난 셋째 이모는 겸손하게도 타고난 끼를 동네 노래자랑대회 정도에서만 발휘하고 정작 현실에서는 결혼부터 육아에 이르는 험난한 시대적 사명을 완수하느라 형제들과 함께할 여유가 없었다. 셋째 딸이 가장 예쁘다는 자연의 법칙을 깨고 태어난 아름다운 돌연변이, 넷째 이모는, 내세에 충실한 종교생활에 몰두하여 오직 기도로만 사랑하는 형제를 돌보고 있다.
둘째인 나의 어머니는 탁월한 능력과 체력을 지닌 오지라퍼. 사실, 동생들을 육아, 교육, 결혼, 출산으로 인도하며 키운 건 나의 어머니였다 한다. 부유한 집안 출신, 한량 중의 한량, 할아버지가 팔도를 유람하며 재산을 탕진하면서 가정을 내 몰라라 할 때 일부종사, 알뜰한 외할머니를 도와 그 대가족을 지킨 것이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일곱 명의 자손이 모두 모인 마지막 그 자리에서 '미안하다. 고생 많았다'며 평생 끼고 계셨던 반지를 몸소 끼워 주신, 바로 그 딸이다.
외할머니께 들은 일곱 자식들에 대한 일화는 아마 장편 대하드라마 정도는 될 것이다. 집 안에 꼭 한 명씩은 있는 검은 양, ㅇㅇ. 먹을 것을 사 오면 딸 ㅇㅇ 은 자기 몫을 따로 챙겨 숨겨놓고, 나머지 것을 형제자매들과 나눠먹고는 나중에 몰래 숨어 자기 몫을 먹었다는 얘기, 어느 날, 혼냈다고 아버지 찾아 삼만리를 시도한 ㅇㅇ을 찾아 온 가족이 ㅇㅇ을 찾아 삼만리를 떠났으나 정작 집 다락방에 숨어 있었다는 얘기. 수 많은 이야기 중 나의 관심은 단연 나의 어머니 얘기다. 어머니는 배고픈 시절에 식구들과 밥을 먹을 때마다 이미 먹은 척하고 멀찌감치 물러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나는 다 클 때까지도 어머니는 생선뼈에 진심인 줄 알고 있었다.
당시, 언니, 동생들이 맛나게 먹을 때, 같이 뒤로 물러나 어머니 곁에 있던 존재가 막내이모다. 긴 외유 끝에 한 번씩 집에 머무르실 때마다 귀한 생명을 안겨? 주시곤 했던 할아버지는 어느 날 또 떠나고, 아무도 없을 때 진통하기 시작한 할머니, 긴급 상황에서 나의 어머니가 직접 출산을 도왔고 그때 태어난 이가 막내이모다. 내가 태어났을 때 늘 내 곁에서 보살펴주고 놀아준, 천사 같은 이모를 그렇게 선물 받았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외롭지 않은 건 아니어서, 그 이모는 무척 외로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위로, 언니, 오빠들은 나이 차이가 좀 있고, 아래로, 비록 인원수로는 형제들에게 밀리지 않지만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조카들에게는 이모도, 형제도 아닌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할머니는 사랑은 많으셨지만 살갑게 챙겨줄 여유가 없으셨다. 그래서 내성적인 막내이모는 당시 베이비붐 시대의 아이들이 그러했듯 거의 혼자 자란 것 같다.
많은 형제들 틈에서 제일 약한 존재. 몸도 마음도 조그맣고 더구나 이모는 손가락 길이가 보통 사람들의 반도 안 되는 몽당손을 갖고 태어나서 놀림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또 그런 걸 이해시키고 보듬어 줄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정 많은 대장부, 우리 어머니가 부족하나마 보살펴 줬을 뿐, 뒤돌아보면 이모는 늘 구석에서 그 작은 손으로 실이나 천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기만 했었다.
얼마 전 고항집 정리를 하면서 알뜰한 이모가 쓰겠다 하여 물건 하나를 건네주는데 이모가 수줍게 웃으며 실로 짠 수세미를 몇 개 내어놓았다. 다ㅇㅇ나 시장통에서 파는 것과 모양이 비슷하여 돈 주고 샀나 보다 했더니 인터넷에서 방법을 보고 직접 짰다 한다. 집에 와서 보니, 탄탄한 이음새며 색감이 좋아, 보통 예쁜 게 아니었다.
원래 손재주가 뛰어났고 참을성과 끈기가 있어서, 일찍 시집가서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 올인하지 않았다면 '명사' ㅇㅇ, '달인'ㅇㅇ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도 이모부께 따뜻한 밥 해줘야 해서 조카 보러 움직이기가 어렵다는 이모와 통화를 끝내고, 물론 지금까지 대부분의 주부들의 삶이 그러했겠지만, 이 험한 세상에서, 연약한 몸과 마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충실히 자신과 가족을 지켜온 이모의 작은 몽당손을 떠올리며 존경하는 마음에 작은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