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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과맘 Jun 04. 2023

영어를 못해도 당당하기

눈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는 여유

내가 지도하는 영서가 주말에 친구들과 영화관에 다녀왔다. 영화 관람 중 엄청 화나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내내 바로 뒷자리에 앉은 외국인 2명과 한국인 1명이 시끄럽게 떠드는 바람에 영화 음성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관람객들은 화가 나서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큰 기침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참다 못해 영화를 보러 간 일행 중 가장 어린 초등 5학년이 등을 돌려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쉬잇!" 하고 길게 소리냈다. 하지만 세 사람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소주와 안주를 먹고 마시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깔깔거렸다고 한다. 아이들의 앞자리에도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아저씨가 계셨지만, 혼자 궁시렁거리실 뿐 떠드는 사람들에게 대놓고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관람자들은 영화가 끝나고 그 세명의 여자들을 불만스럽게 흘겨보며 나갔다.


"I think you should shup up next time!"

(다음엔 입 좀 다무시죠!)


함께 영화를 보았던 아이들 중에 평소 당찬 한 아이가 떠든 여자들을 보고 이렇게 내뱉었다. 영서도 한마디 거들고 싶어 속이 부글거렸지만 막상 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시원하게 말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왜 사람들은 긴 시간 명백히 잘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부글거리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영서야, 그 사람들이 다 한국인이었으면 어땠을 거 같애?"

"아저씨들이 막 뭐라고 했을 거 같아요. 우리 아빠였으면 경찰을 불렀을 걸요! 저도 뭐라고 하긴 했을 거 같아요."

"그래 맞아. 우리는 영어를 쓰는 사람들 앞에서 괜히 마음 졸이는 증상이 있어."


친구가 그들에게 영어로 불만 제기를 하는 걸 보고, '나도 저런 말을 할 수 있는데, 왜 못했지?'라는 후회가 밀려왔다고 했다. 다음 번에 그런 일이 있거든 그냥 한국말로 크게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라고 하니, 그럴 걸 그랬다며 그땐 그런 생각이 안났다고 했다. 직접 말하기 부담스러우면 밖으로 나가서 관리인에게 불만을 얘기하면 그분들이 대신 와서 조용하게 할 테니까 영화에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하니, 다음엔 그래야겠다고 했다.


이뿐인가. 멀쩡히 영어 시험을 잘보며 영어를 잘한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조차, 막상 영어를 사용할 상황이 되면 자신감이 없다. '이런 말을 하면 저 사람이 못 알아 들으면 어쩌지? 엄청 창피하겠지?' 이러면서 창피를 피하는 쪽에 안주한다.


서양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말을 못한다고 해서 쫄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영어를 꼭 잘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당당함으로 콩글리쉬로 말하더라도 당당했으면 좋겠다. 영어가 우리말보다 더 우월한 언어는 아니다. 그저 눈을 마주보고 고마울 땐 "Thank you."라고 웃으며 말하고, 불편함을 준 것 같을 땐 "I'm sorry."를 정중하게 말하면 되고 쫄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비즈니스 미팅도 아닌데 말이다. 심지어 외국 여행을 갔을 때는 우리가 돈을 쓰러 간 것이 아닌가? 그냥 당당하기로 맘만 먹으면 된다. 프랑스인들처럼 그냥 자기 나라말로 하고 싶은 말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알아 들어야 하는 것은 상대방이라는 마음으로. 아니면 생각나는 대로 천천히 말을 해도 간단한 상황 영어는 통하게 되어 있다. 바디랭귀지도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서양 문화와 서양인을 더 우월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 보인다. 언어를 문법 위주로 배우다 보니 틀리지 말하야겠다는 걱정이 앞서서 아는 것도 꺼내기 어렵다. 또, 어려운 용어를 암기했으나 일상 회화에 노출된 경험이 적어 쉬운 대화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영어 교육도 문제의 원인이다. 우리는 꼭 필요한 상황임에도 가장 단순한 대화를 하지 못하게 벙어리 영어를 오랫동안 배워왔다. 온 국민이 너무나 힘들여서 그랬다.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 우리말을 하듯이 영어도 그저 당당하게 말해도 된다. 눈을 해맑게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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