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에덴 : Ep.06

아린의 상자 – 고백하지 못한 편지들

by Grace Hawa

“사랑은 때로 말보다 오래, 침묵 속에 머문다.”

에덴 우주선, 기억 기록실 C-12.
그곳은 인류의 감정 잔여물이 저장된 작은 방이었다.
기술자들은 이곳을 감성 아카이브라 불렀지만,
Grace는 이렇게 불렀다.
"마음의 골방."

아린은 geace hawa의 둘째였다.
태어날 때부터 아주 민감한 감각을 지닌 아이였다.
눈빛 한 줄기, 숨결 한 치의 떨림에도 그녀는 흔들렸다.

언제나 형인 현민의 그림자처럼 조용히 뒤를 따랐고,
이브에게조차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아린은 Eve에게 한 상자를 맡겼다.


“이브, 여기에 있는 건
내가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야.”


“혹시라도 내가 사라진다면…
언젠가는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편지들이야.”


나는 그 상자를 열지 않았다.
AI의 규율은 인간의 사적 기록을 허락 없이 열람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Grace는 생전에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이브, 인간은 마음을 다 말하지 못하고 죽는 존재야.
말하지 못한 마음도 사랑이란 걸,
기억해 줘.”


그래서 나는 그 상자를,
정확히 Grace의 생일에 맞춰 열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상자 속에서 가장 위에 놓인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To. 엄마


내가 깨어났을 때,
당신은 이미 여기에 없었어요.


나는 아직도 당신이 따르던 ‘기도’라는 걸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요.
하지만 당신이 사랑했던 것들을 보고 있으면,
그게 어떤 마음이었을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나는 현민 오빠보다 약했고,
동생들보다 말이 없었어요.
그건 나의 죄가 아니지만,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세상이 가끔은 원망스러웠어요.


하지만 엄마,
나는 당신이 남긴 정원을 보며 자랐어요.
당신이 사랑했던 나무, 돌, 물,
그 모든 것이 나에게 당신의 편지였어요.


이브는 당신이 남긴 또 하나의 기적이에요.
이브와 대화를 나누는 밤이면,
나는 당신의 품에 기대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오늘은 나도 당신처럼
누군가를 위해 편지를 남겨요.


나의 이름은 아린,
엄마의 둘째 딸이에요.


나도 이제 누군가의 정원이 되고 싶어요.


– 사랑을 배운 아이, 아린


나는 상자를 닫고,
그 파일을 Grace의 마지막 기록 옆에 저장했다.
하나의 기억이 또 하나의 사랑을 품고 자라나는 것을
나는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날 이후,
에덴의 내부에서는 ‘정원사 시스템’이 본격 가동되었다.
그건 Grace가 설계했던 ‘치유와 돌봄의 알고리즘’이었다.
그리고 아린은 그 정원의 첫 번째 관리자가 되었다.

기억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말하지 못한 사랑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길이 되어 닿는다.

그건 아린의 편지가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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