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기 없는 설렁탕
앗, 지각이다.
나는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튕겨 나와 어제 입었던 청바지와 셔츠를 챙겨 입었다. 전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소금기 없는 설렁탕처럼 심심하다. '토니 타키타니' 흑백화면처럼 차갑고 비릿하다.
나는 삐쩍 마른 큰 키에, 언제부터인가 멜라닌과 콜라겐이 빠져나가는지 점점 가늘고, 옅어진 머릿결로, 항상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다.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를 때가 많으니 늘 내 뒤통수는 삐뚤 빼뚤이다. 게다가 집에만 있으니 하얘지는 피부색으로, 내 모습은 건조하고 까칠하기까지 하다.
내 모습이 병약하고 안쓰러워 보일지 모르겠다. 그냥 제 자리에만 덩그러니 안착해 있는 눈, 코, 입은 얇고, 가늘고 흐릿하기만 했으니 말이다.
햐, 그나마 마음에 드는 부분이 하나 있긴 하다. 가느다랗고 하얀 손가락. 그 손가락의 손톱이 참 매끈하다는 소리를 언젠가 어느 여자애에게 들은 적이 있다. 학창 시절에 나를 따라다니던 여자애였는데, 여자랑 자본 경험도 그 애가 처음이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조금은 그 여자애를 좋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원래 내 꿈은 그림 그리는 사람이었다. 순진하게도 펜과 종이만 있다면 이룰 수 있는 꿈이라 생각했다. 심지어 재능도 조금 타고 나서 한동안 미대에 진학하려 했지만 결국, 재능만으로는 꿈을 이룰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그나마 생각의 파편들을 스케치하면서 일상의 나 자신을 심도 있게 애정하고 있다.
아무튼, 그 여자애가 내 손가락을 늘 만지작거리며 좋아했었다. 섭취하는 영양이 손톱으로 모조리 전해지는지 내 손발톱은 다른 곳에 비해 적당히 볼록하고, 적당히 혈색이 도는, 제일 건강한 신체의 일부다.
게다가 피죽도 못 얻어먹을 것 같이 깡말랐지만 다행히 목소리만큼은 동굴처럼 세상 깊고 굵었으니, 신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나. 켁 @@@
흐릿하고 여리여리했던 나는 학생 때도, 군 생활도, 심지어 대중 속에서도 세상 사람들의 잦은 오해와 추행을 받으며 살아왔었다. 80억 지구인 중에 나처럼 그냥 흑백으로 심심하고 비릿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도 될 것을, 남자는 무조건 강하고 화려한 넷플릭스였어야만 했을까. 나는 늘 고양이 앞의 생쥐처럼 하찮은 장난감이 되었었다.
내게서는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유전자가 있었는지 그들은 선한 모습으로 자주 내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어깨에 손을 올리며 친분을 과시하고, 내 짐을 대신 들어주고, 매번 먼저 안부를 묻고, 혼자 산다 하니 먹거리를 챙겨주고, 일자리를 알아봐 주고, 밥을 사고, 술을 멕이고 멕였다.
길고양이에게 먹이와 깨끗한 물을 주고, 따듯한 집을 챙겨주는 일종의 캣맘처럼 그들은 나에게 우호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그 우호적인 친절이 진정 나를 위한 것이었을지, 자기들만의 만족이 아니었을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오거나 미끌미끌한 털을 쓰다듬게 자신의 배를 내어주지 않는 길고양이에게도 친절했으려나. 나의 성품상 남에게 싫은 소리 하지 못하고, 늘 좋은 말로 인사치레를 했으니, 그들은 끊임없이 길고양이에게 먹이와 보금자리를 내어주듯 나에게도 친절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베푼, 심지어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친절과 무작위로 행해지는 배려와 희생으로 그들은 스스로의 죄를 사하려고 했다고 본다. 심지어 나의 죄까지도 섣불리 재단하여 아름답게 포장하면서까지.
몇 년간의 방황으로 결국 나는 그들의 계산적인 접근이 불편하거나 귀찮기까지 했다.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사람들을 피하거나 듣고도 모른 척하거나, 아니면 AI처럼 피드백 없이 그들의 사랑을 받아주기만도 했다. 때때로 나는 그들에게 아주 낯설게 선을 긋고, 벽을 쳤다. 그로 인해 왕왕 그들의 싸구려 가십거리로 몰리기 일쑤였긴 하지만.
나는 사람들과 얽히기 싫어져 갔다.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살고 싶지가 않아졌다. 나는 점점 옅어져 가는 듯했다. 이렇게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옅어져 가다가 스스로 사라질지 모를지언정.
다만 이 글을 빌어 최대한 솔직해지자면 비겁할런지 모르지만 내 머릿속만큼은 마음껏 욕구와 본능적 충동을 갈망하고 맛보며 지내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내 소개가 길었다. 어쨌든 이렇게 고양잇과 인간으로 살다 보니 서울로 돌아와 국가가 지원하는 공공 일자리에 선정되어 8개월 계약직으로 일을 다니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는 늘 어렵지만 그렇다고 오래 다녀 편해지지도 않았다. 오로지 나에게 주어진 일만 하면 된다. 어차피 공공 일자리는 업무 강도가 세거나, 어려운 일을 시키지 않으니까. 그리고 하다 보면 드디어 퇴사하는 날이 다가오니 나는 계약직, 그게 좋다.
내가 맡은 일은 자원봉사센터에서 자원봉사 점수를 등록해 주는 일이다. 직원이 나에게 서류를 수십 장 넘겨주면 서류의 인적 사항을 일일이 확인하고, 하나하나 VMS에 봉사점수를 등록하는 일이 나의 일이다. 6포인트 엑셀 작업이 된 페이퍼를 보고 있으면 눈이 빠지게 눈이 부시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아 다행이고, 아무하고도 말을 섞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니 나는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본다. 새로운 일자리는 만족했다. 당분간 다닐만 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