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체취 1.

롯데캐슬 수급자세대

by injury time

어쩌면 나는 나 스스로를 오만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고, 그러니 내 삶에는 실패나 좌절이나 상실, 좌초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상과 섞이지 않고 조용히, 스스로 잘 살아가는 일은 나의 자만이었고, 안일함이었다. 세상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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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강풍과 함께 세찬 장대비가 곳곳에 쏟아집니다. 동해안은 큰 파도가 예상되오니 선박의 운항 및 해양 활동을 삼가시고, 주민들은 강풍에 대비하여 창문을 잘 닫아 움직이지 않도록 하고, 안전을 위해 집 안에 있도록 합니다.


풍랑주의보가 연일 발표되고, 폭우까지 내렸다. 온 세상이 뒤집어질듯 세차게 흔들리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야외 활동을 삼가라는 안전 문자 알림이 새벽부터 쌓이는 게 일상이 되어갔다.

침대 바로 앞 전신 거울에 비친 버려진 나의 방. 그 속에 자줏빛 섬처럼 떠 있는 침대. 너무 오래 되어 솜이 뭉치고, 귀퉁이마다 낡아빠진 나의 자줏빛 애착 이불. 그 이불 귀퉁이에 입술을 갖다 대고 촉감을 느끼며 한동안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그때마다 극세사의 부드러운 촉감에 내 검은 눈동자는 더욱 새까매져 몽롱해진다.

30억 시세를 호가하는 이곳, 층간소음 없는 52평 명품 아파트 단지에 아홉 평짜리 숨어 있는 수급자 세대가 있다. 이 집은 어머니가 분양받은 아홉 평 임대아파트였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런 임대아파트가 숨어 있다니. 어머니의 명품 아파트는 언제나 당신의 자랑거리였다. 처음 이사를 오던 날, 작지만 깔끔한 신발장부터, 외풍 하나 없이 골고루 따듯한 집 안 구석구석. 싱크대와 타일 하나까지도 고급지지 않은 게 없다고 어머니는 행복해하셨었다.


이런 교통편 좋은 지하철역 3분 거리의 이 명품 아파트 단지 내에 중간중간 숨어 있는 세대가 있으니 그 세대가 바로 아홉 평 저소득 수급자 세대이다. 수급자 세대는 관리실에서나 구분하지, 일반 주민이 겉으로 봐서는 절대 찾아낼 수가 없는 구조다.

화분 하나 내다 놓을 정도로 작은 베란다. 한강 반대편으로 나 있는 이 작은 베란다 하나가 바로 은밀히 지어진 수급자 세대. 700세대 중에 이 숨은 17세대가 30억 자산가들과 같은 주차장과 출입구를 쓰고,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평범한 현관문과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어머니는 이곳에서 5년을 버티다가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다행히 어머니 밑으로 주민등록이 되어 있어 나도 이곳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사망신고를 하러 간 주민센터 사회복지사가 안내해 주었다. 마침 이직을 하고 서울로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살던 고시텔을 정리하고 어머니가 살던 작은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온 지 두 달째다.


아, 나를 설명하자면. 나이는 스물아홉. 신체 건강한 남자 성인. 사실 신체 건강한지는 모르겠다. 복무 중에 급성 폐결핵이 발병하여 조기 퇴소당했다. 그 후 2년 동안 치료를 받고 이제는 일상으로 복귀해서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나는 고양잇과 인간이다. 고양이와 같은 이목구비를 가졌다는 것이 아니다. 누구와도 얽히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헤쳐 나가며, 아니 헤쳐 나간다는 말은 취소다. 헤쳐 나가는 것조차 나는 선호하지 않는다. 그냥 누구와도 얽히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 나간다로 바꾸자. 아니, 살아 나가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산다, 가 좋겠다. 이런, 까다로운 성격이 여기서도 드러나는군.

아무튼, 나는 그날그날 내 삶에 만족하며 나만의 방식대로, 이를테면 의미 없는 그림 같은 것들을 그리며 소소하게 사는 것을 추구한다.


나는 고양잇과 동물처럼 단독 생활을 즐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다는 것은 아니다. 돈은 번다.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경제활동은 물론 중요하기에 그건 어쩔 도리가 없다. 최소한의 의식주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니.

그래서 나는 최대한 적게 먹고, 자주 자고, 필요한 만큼만 벌면서 하루하루의 루틴대로 시간을 활용하며 자알 보낸다. 다행히 두부와 소시지와 돌돌말이 대패삼겹살을 포장하는 쿠팡 로켓플래시가 언제든지 나 같은 젊은이를 기다린다. 아주 단순한 삶을 나는 최대의 목표로 한다.


사회생활로 나를 변화하며까지 개발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지금의 이 레벨에서 아등바등 높아지고 싶지 않고, 그저 소소하게 살다 생을 마감하고 싶을 뿐이다. 집에서는 혼자 최대한 느리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추구하고, 최소한의 사회망을 만들고 살아간다.

우리 대한민국은 고맙게도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일자리를 준다. 일을 하는 동안의 바깥 생활은 낯설지만 그 끝이 있어서 버틸 수 있다. 그냥 세상이 나를 내버려두면 길거리의 흔한 길고양이처럼 스스로 살아가고, 스스로 죽길 바란다. 우리 어머니처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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