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주차장이 비좁아 멀리 차를 대고 오겠다며 나를 장례식장 앞에 내려주고 떠났다. 아내는 고마운 사람이다. 밖은 어느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밤공기는 급격히 차가워지고 있었다. 어둠은 깊어졌고, 장례식장 특유의 매운 향냄새가 안개처럼 무겁게 퍼져 있었다. 마치 망자들의 혼이 떠도는 듯, 하얀 연기 같은 것이 희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전광판에 ‘박해수(여) 45세’라는 글씨가 뜨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듯 굳어갔다. 빈소 앞에서 한참이나 머뭇거렸다.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해수의 마지막 고통스러웠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유 없이 온몸이 떨리며 경련하듯 진동이 일었다.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돌려 해수의 빈소를 찾았다. 아직 조문객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 영정 사진 속에서 해수가 웃고 있었다. 목에 둘린 감색 체크무늬 목도리—그 옛날 눈 오는 날 내가 감아준 것이었다. 사진 속 해수의 눈동자엔 어딘가 아련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그 눈빛이었다. 조심스레 구두를 벗고 다가가, 가느다란 향 한 자루와 가장 싱싱한 국화꽃 한 송이를 정성껏 놓았다.
상주가 보이지 않아 흐릿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는데 저 멀리 부의금통 가까이 해수의 남편의 모습이 일그러져 보였다. 넥타이도 어디다 벗어던져놨는지, 셔츠 단추를 두 개나 푼 모습으로 한쪽 호주머니에 손을 꽂고, 다른 한쪽은 조의금 통에 기댄 채 누군가와 낄낄거리고 있었다. 아주 불량한 모습에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해수의 사진 앞에서 나는 끝내 숨을 들이마시며 주먹을 내려놓았다. 사진 속 그 웃음이 내 분노를 조용히 잠재우는 듯했다.
멀리서 검은 상복을 입은 큰누나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얼굴은 울다 지쳐 창백했고, 벽에 기대 선 채 해수의 영정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흰 리본이 힘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나…”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울음을 꾹 참고 누나의 등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눈에 띄게 앙상해진 어깨가 손끝에 전해졌다.
“오느라 고생했네, 우리 막내. 에미는?”
“주차할 데가 없어서요. 금방 올 거예요. 근데... 김서방은 왜 상주라는 사람이 뭐가 좋다고 저렇게 신났어요?”
해수남편의 모습에 영 언짢아져서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저거 서방이 한 달을 고상, 고상 했댜, 해수야 뭐, 아파서 고상하는 거보다 안 낫겠냐 뭐. 피차간에..."
막내누나가 음식상을 차리며 거들었다.
"남은 아들만 짠 허지. 을매나 그 넘의 암이 독하게 퍼졌는가 마지막에는 인자 제발 지 좀 놔달라고 지 몸뚱이를 쥐어뜯었당께. 오메, 우리 짠한 해수가... 에효....."
해수를 혼자 두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다녀간 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했다. 근처의 공기 좋은 호스피스에서 한 달을 버티며 결국 눈을 감았다고 했다. 한 달을 아들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로 의식 없이 죽어갔다고 했다. 재능이 많은 아이였다. 나로 인해 꽃 피우지 못한 청춘과 재능의 너무 많은 아이였다. 우리는 어쩌다 아무 기대도 없는 사랑을 시작했을까. 너무나 아깝고, 아쉽고, 안타깝고, 안쓰러운 우리 해수. 나의 해수. 나는 다시 한번 영정사진 속 체크 목도리를 하고 활짝 웃고 있는 해수의 모습을 보며 아이의 행복을 빌었다. 아무 걱정도, 고통도 없는 세상에서 마음껏 사랑하고 행복하길 바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반짝이던 해수의 또 다른 삶이 이어지길 진심으로 빌었다.
*
해수가 떠나고 몇 해가 지났다. 사실 매일 하릴없이 마음 둘 곳 없을 때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해수를 찾는다. 아침에 눈을 떠서 시간을 확인하고, 밤새 확인 안 한 메시지가 있나 살펴보며 마지막으로 늘 습관처럼 해수의 과거 흔적들을 확인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해수를 잊지 않고 찾아보는 것 밖에 없다. 글을 쓴다는 건 행운이다. 해수가 세상에 없지만 또 다른 해수를 금세 찾을 수 있다. 해수의 글들에서 늘 찾아 읽던 부분을 쫓아 읽고, 해수가 남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눈에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해수가 정말 아직도 여기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한다. 분명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이다. 어쩜 해수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문득 카톡을 확인했다. 수없이 많은 동그라미 속 사진들 속에 해수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 빨간 점이 띄워져 있었다. 아들과 함께 오솔길을 걷던 건강했던 해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나에게 보내는 잘 지낸다는 그녀의 대답 같아 안심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해수의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다. 누군가가 그녀의 계정을 가져갔나 보다. 사진 속 교복을 입은 소녀는 친구들과 함께 카메라 렌즈 안으로 고개를 내밀고 밝게 웃고 있었다. 어쩐지 손에 꼭 쥐고 있던 동전을 잠깐 한눈 판 사이에 다리 아래 깊은 강에 빠뜨린 기분이 들었다. 혼란스러워 다시 한번 저장된 프로필들을 훑어댔다. 소녀가 그 옛날 해수를 닮은 것도 같다. 하지만 해수는 그렇게 정말 사라졌다.
“여보, 늦었어. 오늘 출근 안 할 거야?”
방문을 열어 아내가 고개를 내밀었다. 주방에선 밥 짓는 소리가 치익치익 흘러나왔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밤새 입고 있던 파자마를 훌훌 벗어던졌다. 주말이 끝나고 이제 다시 월요일 시작이다. 나는 욕실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해수의 SNS에 조용히, 삭제 버튼을 눌렀다.
이번 생은... 이걸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