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제1 우주속도의 인간

제2 우주속도를 무한히 동경하며

by 말린청귤


세상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그러나 성장하고 별 수 없이 성인이 되며 어른이 되어갈 수밖에 없는 과정에서 그 욕망은 많이 수그러든다. 정확히는 ‘수그러지게 된다.’ 정석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에 맞게 살아오려 했다면 더 그러하다. 이제 너도나도 아는 MBTI에서조차 이런 경향을 보인다는 것은 정말로 흥미롭다. 한 MBTI 관련 연구를 보면 S/N 지표에서는 십 대를 지나면 S가 꾸준히 상향선, P/J 지표에서는 J가 20대 후반을 기점으로 퍼센트가 역전한다.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하나밖에 없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현실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현실의 일들을 빠르게 처리해야 하고 이것을 위한 경험을 신뢰하며, 계획과 마감에 맞춰가야 하는 일들이 늘어난다. 전환이 생존에 훨씬 유리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영부영 시간도 세월도 흘러간다. 그 와중에 소위 중위 연령이라는 통계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가끔 확인했다. 올해는 넘었나? 그런데도 평균수명이 늘어가면서 영원히 중위 연령에 도달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통계적으로 대충 땅땅 어른이어야 합니다 하는 판결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기분이었다. 주민등록증이 나온 것은 법적 성인의 의미지만 중위연령이란 사회적 어른의 기준이라는 멋대로인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 해에 걸쳐 계속 미루어지던 어느 날, 순간 벼락처럼 짜증이 났다.


이럴 거면 그냥 어른 안 되어 주겠어.


대의 사춘기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면 가족을 포함한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과 틀을 전부 거부한다는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그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반항을 한다고 나를 먹여주고 살려주지 않는다. 어른이 되기 싫든 좋든 생계를 포함해 나를 돌보는 일을 매일 수행해야 한다. 일종의 궤도다. 아침마다 바위에 달라붙은 따개비 같은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야 한다. 씻고, 옷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서서, 하루를 일하며, 터덜대는 발걸음으로 퇴근을 한다. 궤도의 일상이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퇴근하는 겨울의 밤길은 차갑다. 날이 맑다면 겨울의 밤하늘은 쩡 하고 깨질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 하늘의 달의 모양이 변하는 것은 도시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 보름달이라면 속으로 막연히 소원을 빈다. 내일 로또에 당첨되게 해 주세요. 연금복권도 괜찮습니다. 구매하지도 않은 티켓이 당첨되기를 빈다. 둥그런 달은 차마 비웃을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 옆의 반짝이는 수백 년 전 빛일지도 모르는 별들은 참지 못하고 눈을 깜박거린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처럼 우주가 윙크한다.


그 가운데 웃지 않는 빛들은 어쩌면 지구의 빛일지도 모른다. 인공위성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 빛은 별들과 달리 깜박이지 않으며 규칙적인 속도로 일정한 궤도를 돈다. 1957년 처음으로 지구 저궤도에 오른 스푸트니크 1호의 후예들은 먼저 날아오른 선대의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같은 속도로 달렸다. 지구 주위를 지표면 근처에서 추락하지 않고 원 궤도로 돌기 위해 필요조건인 초속 약 7.9km인 제1 우주속도에 도달했다. 이제 수많을 인공위성들이 지구 주변이라는 공간에서 정체를 겪고 있다. 빛공해를 유발해 천문관측에 미치는 해로움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주시대를 열었던 위성들에 대한 논의는 이제 다른 축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인공위성들은 수명을 다하면 대기권 재진입을 통해 소거되거나, 혹은, 묘지궤도로 진입한다. 뒤따라오는 위성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퇴직하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이 말은 영구히 우주에서 떠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아주 안정적이나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지구에 붙들려. 지구의 중력을 탈출하고 싶다면 속도를 내어야 하겠지. 아마 그 위성들은 지구에서 멀기 때문에 더 적은 탈출 속도가 필요할 거야. 하지만 모든 에너지원을 반납한 채 은퇴한 인공위성은 그 속도를 영원히 낼 수 없을 것이다. 순응하기 싫은 인공위성이 지구의 중력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여분의 에너지원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시작지점인 지상으로부터 지구의 궤도에서 벗어나 탈출할 수 있는 속도인 초속 약 11.2km를 내야 한다. 이러한 제2 우주속도는 제1 우주속도의 약 1.5배이다.


문득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회의 궤도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어떤 어느 정도의 속도를 내야 할까.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내게 부여해야 할까. 제1 우주속도처럼 나이를 먹고 정확한 궤도에 오른다. 지구의 궤도를 맴도는 것처럼 사회에 적응한다.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는……. 중력에 붙들린 다리를 움직이며 생각한다. 지구의 인간이 고착된 인력에서 벗어나 영원히 탈출하고 싶다는 욕망은 과연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한다. 세계 인구 80억여 명 중의 1명이 한국의 도시에서 마치 사춘기에 다시 도달한 것처럼 생각한다. 밤의 퇴근길에 멈춰 선다. 궤도를 멈추고 싶은 듯이.


지구를 맴도는 인간,

영원히 제2 우주속도를 동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