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등은 늘 섬뜩한 메시지를 보낸다 - 삼시새끼에 집착을 보이며
그는 말이 없지만 그의 등은 간담에 서늘해 질만큼 분노에 찬 이글거리고 있다.
그의 그루밍(가스라이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의 분노에 찬 모습이 두려운 나는 어느덧 그의 표정이 두려워서인지 피하고 싶은 건지 아내는 스스로 조종되어 가며 병들어 가고 있었다.
그의 입맛을 눈치 보며 밥상을 준비해야 했고, 아무리 피곤해도 그의 표정이 잔인하게 바뀌기 전에 스스로 부엌으로 들어가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그는 유독 삼시새끼에 집착했다. 하루 삼시 세끼 다른 반찬과 메인 요리와 국이나 찌개를 준비해야 했고, 며칠 전 차린 메뉴가 올라와도 그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눈썹은 하늘 끝으로 쏟아 올랐다. 숨은 거칠게 몰아 쉬고 분노로 지글거렸다. 매주 21가지의 다른 국과 수십 개의 다른 메뉴로 준비하지 않으면 그는 아내를 천하의 몹쓸 죄인 취급하며 "가족이 먹는 거만 봐도 행복한 거 아니냐?"를 반복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인간도 아니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각인시켰다.
정작 그는 십 수년을 제대로 된 직장 생활도 하지 않으며 경제적 가장이 되는 걸 스스로 포기했다. 생활비 한 푼을 주지 않으면서도 삼시새끼에 집착하며 아내에 대한 괴롭힘을 멈추지 않았다.
아내는 가족과 길거리에 나 앉을 수 없었기에 앞만 보고 열심히 일을 해서 혼자서 경제적 책임을 져야 했다. 그리고 인정받는 직장인이었지만 불행한 삶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아내는 자존심이 무척 강한 사람이다. 이혼녀가 된다는 건 그녀에게 인생의 실패라는 간판을 걸게 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다 부질없는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아내가 아파서 몸져누워 있어도 그는지글거리는 분노의 얼굴로 "아파서 누워만 있는다고 다야? 밥은 차려 놓고 누워 있든지 하라고! 가족들 다 굶길 거야?"라고 소리를 지르며 아픈 아내의 이불을 걷어 차고 몸을 침대에서 끌어내렸다.
십 수년 동안 아내는 잔인하게 학대받으며 가스라이팅을 당해 왔다.
그가 유독 삼시새끼에 집착한 이유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가방끈까지 잘려 가며 나가서 돈 벌라고 윽박지르던 술주정뱅이 아버지에 의해 굶는 날이 빈번했기에 누군가 밥을 안 주는 건 잔인하게 그를 학대하는 것과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그의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아니었기에 그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의 대상이 아니었다. 아내는 십 수년에 흐른 후에야 얼마나 잔인하게 조정당하고 학대당했는지, 벗어나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난 학대하며 가족들을 굶기던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아니라 보호받았어야 할 아내라고"
그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에게 학대받던 어머니를 불쌍하게 여기지만 늘 그의 불행했던 그의 어머니가 아내의 기준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아무리 감동적인 스토리나 영화를 봐도 그는 눈물이 없다. 어릴 때 학대받으며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서일까? 그는 눈물을 모른다.
이미 어릴 적 그의 인성은 파괴가 되었다. 그러나 겉으론 온화한 표정을 지었고 가족에게 잔인하게 가스라이팅 하며 학대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나르시시스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