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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니 Aug 16. 2021

아니, 여기가 무슨 광안리야?

대유행 코로나, 대유행 관광지


강원도 고성군의 인구는 약 2만 7천 명이다. 심지어 이중 약 48%가 타지 출신의 직업군인을 포함한 군(軍) 가족이다. 일반 주민이 약 1만 4천 명, 군인가족이 1만 3천 명인 꼴이다. 숫자가 체감이 잘 안 온다면, 한때 ‘오빠아아악!’을 뜨겁게 외쳤던 올림픽 체조경기장을 떠올려보자. 총 좌석수가 약 1만 4천 석인 이곳에, 고성의 모든 군(郡) 민들이 총출동을 한다? 절반씩 이틀이면 콘서트 양일 매진이다. 고성군민들이 이틀 동안 미스터트롯 콘서트를 즐기는 동안, 텅 빈 고성 마을 길엔 이등병들이 운전하는 전차만 돌돌 굴러다닐 거란 얘기다. 고성 바로 밑의 속초도 상황은 비슷하다. 행정상 市 이긴 하지만 인구가 8만 2천 명이 고작이다.


고성은 작은 군(郡)이지만 동해안을 끼고 있고, 속초의 바로 윗동네라 관광객이 어느 정도 찾아오긴 한다. 여름이 다가오는 주말에는 오래간만에 북적거리는 분위기에 나도 덩달아 신나기도 하고. 그런 여름밤엔 침대에 누워 해변에서 펼쳐지는 공짜 폭죽쇼를 관람하는 재미도 있다. 작년 여름, 대략 고성엔 12만 3천 명의 관광객이 왔다고 한다.


어느 날부터 친구들에게 꽤 연락이 오더라.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강원도 고성을 배경으로 유명 연예인들이 나온다고 말이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는 나로서는 당최 알 길이 없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은 스트리밍으로 나오는 연합뉴스가 전부니까. ‘신서유기’. ‘여름방학’, ‘강철 부대’ 모두 고성에서 촬영했던 프로그램이란다. 평일 낮에 해변가를 쭉 훑으며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오늘도 무엇인가 정체 모를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저번 달엔 공현진에서 ‘바라던 바다’를 찍고 있다던데, 이번엔 자작도다. 또 무슨 CF 인지 어디 방송인지 모를 일이다.


올해 봄부터 문득, ‘차가 벌써부터 너무 막히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는 교통체증이 특히 심해지곤 해서 속초 방면으로 잘 나가지 않는데, 평일에도 벌써 막히기 시작한다. 여름휴가가 이르게 찾아왔다 싶었다. 보고 들었던 것이 있기에 ‘매체에서 보고 많이들 찾아오는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코로나 없는 청정지역’, ‘청정해변 고성’ 등의 문구를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날이 더워질수록 차는 더 막히기 시작했다. 고성-속초를 이어주는 시내버스도 올해는 정체를 피해 핫한 해변 중 한 곳인 아야진해변을 우회해서 돌았다. 가끔 가는 중국집의 방문객 명부엔 죄다 서울, 경기도의 지명이 흘림 글씨로 적혀있었다. 동네 마트인데도 소주, 맥주, 라면 등을 때려 담은 카트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 때문이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고성군 보건소 코로나 검사자 줄도 조금씩 길어졌다. 그리고 오늘, 올해의 여름휴가 최절정인 광복절 연휴가 막 끝나려 한다. 과연 고성엔 몇 명의 관광객이 왔다 갔을까.


인구 2만 7천의 고성에, 아직도 진행 중인 올해 여름, 무려 178만 명 이상이 왔다. 작년 대비 1351% 증가다.


‘아니 미친, 여기가 무슨 광안리야?’


이미 유명한 관광도시인 속초와는 다르게, 고성은 본디 군사도시다. 부대 훈련 기간엔 차도에 전차 행렬이 이어지고 숲 너머에선 사격훈련으로 총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곳이란 말이다. 가끔 귀순 사건으로 원치 않을 유명세(?)를 타긴 했는데, 관광명소로 유명한 건 아니었단 거다. 고성으로 이사 온 지 꽤 오래된 분들도 고개를 젓는다. 요 몇 년 새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버렸다고.


특히 올해 고성군민들은 정말 억울할 지경이다. 고성군의 코로나 누적 확진자 수는 금일(21.08.16)을 기준으로 50명이다. ‘하루에 50명 발생이 아니고?’ 다른 지역민들이 보기엔 청정지역이 따로 없다. 그래서 다들 이 코로나 청정지역으로 달려온다. 벤츠를 끌고, 텐트를 들쳐업고, 하허호를 붙이고 고성으로 178만 명이 왔다. 유명한 식당에 줄을 서서 들어가 단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물놀이를 하며 신나게 소리 지른다. 여름휴가에 해변가에서 마시는 맥주와 폭죽쇼도 빠질 순 없다.


그럼 2만 7천 명의 고성군민들은 어디로 여름휴가를 갈까? 그들의 휴가지는 2년째 집이다. 내 가족 중 누군가가 51번이 되지 않기 위해, 51번, 52번으로 이름 붙여져 좁디좁은 지역사회에서 차별당하지 않기 위해서 꼭꼭 숨는다. 집과 10분 거리의 해변에서 다른 지역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놀 때, 고성의 아이들은 집에서 방학을 보낸다. 정말 우습게도 고성군민들은 ‘물놀이 안전 수칙 준수 당부’와 ‘외지 방문자와 접촉 자제’라는 겸할 수 없는 안전 안내 문자를 동시에 받는다.


이곳에서 알게 된 언니에겐 초등학생 아들 둘이 있다. 주말마다 아파트 공터에서 서로를 친구 삼아 공을 차며 노는 형제가 너무 안타까운 8월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참고자료

고성, 속초지역 방문객 수치(강원일보, 2021.08.16)

고성, 속초지역 인구수(네이버, 강원도민일보 2021.07.26)

고성지역 코로나 누적 확진자수(고성군청 202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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