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 집주인이 바뀌었대요. 근데 연락이 안 돼요."
깡통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상담실에 와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계약할 때 만났던 사람은 사라지고, 등기부등본에는 처음 보는 이름이 찍혀 있다. 전화는 불통, 문자는 읽씹.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막막해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깡통전세 사기를 당했을 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을 정리해보려 한다. 특히 세금 문제는 많은 분들이 놓치는 부분인데, 이게 보증금 회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먼저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깡통전세란 쉽게 말해 '속이 빈 전세'다. 집값이 2억 원인데 전세가가 1억 9천만 원이면, 집주인 손에 남는 돈은 고작 1천만 원이다. 이런 집을 '깡통주택'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런 집의 소유권이 엉뚱한 사람에게 넘어갈 때 생긴다.
신용불량자, 기초생활수급자, 심지어 노숙자 명의로 소유권이 이전된다. 이 사람들은 명의를 빌려주는 대가로 몇백만 원을 받는다. 본인이 뭘 소유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바지 명의자'가 여러 채를 동시에 들고 있으면? 그 집에 사는 세입자들이 전부 피해자가 된다. 한 사람이 열 채를 갖고 있으면 피해자도 열 명이다.
깡통전세 사기의 무서운 점이 여기 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사기라는 것.
깡통전세 사기 상담에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있다.
"지금 바로 움직이세요."
왜 이렇게 급하냐고? '당해세' 때문이다.
당해세라는 말이 낯설 수 있다. 쉽게 설명해보겠다.
'당해'는 '그 해당하는'이라는 뜻이다. 당해세는 그 부동산 자체에 붙는 세금을 말한다.
대표적인 게 두 가지다.
재산세: 부동산을 가지고 있으면 매년 내는 세금. 집값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연간 수십만 원 수준.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일정 금액 이상의 부동산을 가진 사람에게 추가로 붙는 세금. 연간 수백만 원이 될 수 있다.
이 세금들이 왜 무서우냐.
순서를 무시하고 먼저 가져가기 때문이다.
배당 순서는 어떻게 되나?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낙찰된 금액을 여러 채권자들이 나눠 갖는다. 이걸 '배당'이라고 한다.
보통은 먼저 권리를 확보한 사람이 먼저 받는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일찍 받은 세입자가 유리한 이유다.
그런데 당해세는 다르다.
세입자가 아무리 먼저 전입신고를 했어도, 당해세는 순서와 상관없이 가장 먼저 배당금에서 빠져나간다.
예를 들어보자.
집이 경매에서 1억 5천만 원에 낙찰됐다.
세입자 보증금은 1억 4천만 원.
그런데 밀린 종부세가 2천만 원 있다.
이 경우 1억 5천만 원에서 세금 2천만 원이 먼저 빠진다. 남은 1억 3천만 원만 세입자에게 돌아간다. 보증금 1억 4천만 원 중 1천만 원은 그냥 날리는 셈이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나?
여기서 핵심이 나온다.
당해세는 매년 발생한다. 재산세는 매년, 종부세도 매년. 집주인이 세금을 안 내면 밀린 세금이 쌓인다.
1년 미루면 수백만 원, 2년이면 천만 원 가까이. 세입자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을수록 받을 수 있는 돈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말한다.
깡통전세 사기는 법적 싸움이기 전에 시간과의 싸움이다.
많은 분들이 등기부등본을 떼어보고 "압류가 없네,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위험한 착각이다.
관할 세무서가 왜 중요한가?
당해세가 우선권을 가지려면 조건이 있다. 그 집이 위치한 지역의 세무서에서 부과한 세금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안양시에 있는 집이라면, 안양세무서에서 부과한 재산세나 종부세만 우선권이 있다. 강릉세무서에서 부과한 세금은 후순위로 밀린다.
실제 사례를 보자.
내가 맡았던 의뢰인은 안양시에 거주했다. 등기부를 보니 강릉세무서 명의의 압류가 찍혀 있었다. 의뢰인은 불안해했다.
하지만 분석해보니 문제없었다. 안양에 있는 집인데 강릉세무서 압류니까, 이건 후순위다. 게다가 의뢰인이 대항력을 취득한 시점 이후에 발생한 압류였다.
여기까지는 좋은 소식이었다.
내가 의뢰인에게 덧붙인 말이 있다.
"다만, 등기부에 아직 안 찍힌 세금이 있을 수 있어요."
무슨 말이냐.
세금 고지서가 이미 발송됐는데, 아직 압류 등기는 안 된 상태일 수 있다. 집주인이 세금을 안 내고 버티는 중인 거다.
이 경우 나중에 압류 등기가 되면, 발생 시점으로 소급해서 우선권을 가져간다.
쉽게 말해, 등기부에 깨끗하게 보여도 실제로는 세금 폭탄이 숨어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깡통전세 사기가 무서운 이유 중 하나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믿으면 안 된다.
자주 받는 질문이다.
"아직 계약 기간이 6개월이나 남았는데, 소송해도 되나요?"
된다.
깡통전세 사기처럼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의사가 명백히 없는 경우, 만기 전이라도 소송이 가능하다.
오히려 그게 낫다.
내 경험상 만기 3개월 전에 시작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소송에 4~6개월, 경매까지 합치면 6개월 더 걸린다. 빨라야 1년이다.
연말을 넘기면 그해 세금이 또 붙는다. 앞서 말한 당해세 문제다. 가능하면 연초에 시작하는 게 유리하다.
"경매"라는 단어에 겁먹는 분들이 많다. 복잡하고 돈이 많이 들 것 같다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경매는 어떻게 진행되나?
소송에서 승소하면 판결문을 받는다.
2주간 항소 기간이 지나면 확정된다.
확정된 판결문으로 경매를 신청한다.
법원에서 감정평가사가 집값을 산정한다.
그 금액을 시작으로 입찰이 열린다.
유찰되면 20%씩 가격이 내려가고, 보통 한 달 간격으로 새 입찰이 열린다.
예를 들어 2억 원으로 감정됐다면, 1차에 유찰되면 2차는 1억 6천만 원. 또 유찰되면 1억 2,800만 원.
계속 유찰되면 임차인이 직접 집을 인수하는 방법도 있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마련해요?"
걱정할 필요 없다.
입찰할 때는 최저가의 10%만 보증금으로 내면 된다. 나머지 90%는? 본인이 받아야 할 전세보증금과 상계하면 된다.
무슨 말이냐. 쉽게 풀어보자.
집이 1억 2천만 원에 낙찰됐다.
입찰 보증금 10% = 1,200만 원만 내면 된다.
나머지 1억 800만 원은 내가 받을 보증금에서 상계.
추가로 현금 마련할 필요 없다.
경매가 끝나면 법원에 상계신청서를 내면 된다.
이렇게 집을 인수하면 이제 본인이 집주인이다. 팔아도 되고, 새 세입자를 구해도 된다. 빼앗겼던 돈을 다른 형태로 되찾는 셈이다.
전세자금 대출이 있는 분들이 걱정하는 부분이다.
"대출 만기가 다가오는데, 연장이 안 되면 어떡하죠?"
대출 만기가 되면 은행에 소송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면 된다. 은행에서 요청하는 서류(소장 접수증, 사건번호 등)를 제출하면 대부분 연장이 가능하다.
은행 입장에서도 무작정 상환을 요구하기보다 상황을 지켜보는 게 낫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실무적인 부분이다. 소송을 진행하려면 아래 서류가 필요하다.
전세계약서
계약해지 또는 갱신거절 증빙 (문자, 카카오톡 대화, 녹취록 등)
주민등록초본
보증금 송금 내역 (계좌이체 확인서 등)
소장이 접수되면 사건번호가 부여된다. 대법원 '나의 사건검색' 사이트에서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깡통전세 사기 피해를 입으면 분노와 억울함이 먼저 앞선다. 당연하다.
하지만 감정에 매몰돼 시간을 흘려보내면 회수할 수 있는 돈이 줄어든다. 세금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냉정하게, 그리고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지금 상황이 불안하다면 등기부등본부터 떼어보시길. 그리고 전문가와 상담해서 내 상황이 어떤지 정확히 파악하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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