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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May 27. 2022

외국에서 마시는 느긋한 커피 한 잔.

내 하루는 반자동 커피머신에서 내려마시는 커피 한 잔과 피넛버터를 바른 토스트 두 장으로 시작한다. 식탁에 앉아 향기로운 커피 향을 맡으며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테라스를 내다본다. 테라스 너머에 내 시야를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빛을 가득 품은 초록빛 나뭇잎과 새파랗게 푸른 하늘은 절로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아프리카 남단에 위치한 바쁜 도시이지만 한국과 무척 다르다. 집에서 들리는 건 새소리 차가 지나가는 소리뿐이다. 오전에는 밝은 햇살 속에서 고양이들과 뒹군다. 상쾌했던 햇살이 조금은 느긋해지는 오후에 나는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향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는 야외에 있다.


"The Secret Tea Garden". 아주 직관적인 이름이다. 큰 도로에서 2분 거리에 위치한 이 카페는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 정원이다. 해리포터 4/3 정거장처럼 아주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이 카페는 한국의 작은 공원보다 더 크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햇빛을 잔뜩 머금어서 생기가 가득한 잔디가 탁 트이게 펼쳐져 있으며, 그 위에 4인용 하얀 식탁들이 6-7개 정도로 균일하게 들어가 있다. 평일 오후라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다.


단정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웨이터를 따라서 자리에 앉는다. 내가 항상 주문하는 것은 커피 한 잔과 치즈케이크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급하지 않게, 천천히 노트북을 켠다. 일도 없고, 딱히 공부하는 것도 없는 한량은 자신의 일상을 끄적거린다. 별 내용도 없다. 남들에게 보여줄 것도 없는 내용이기에 SNS에 게시하지 않는다. 찰나의 느낌을 짤막하게 적어본다.  


주문했던 커피와 케이크가 도착한다. 아침에 맡은 향기이지만 집에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다른 원두를 사용하고, 내가 아닌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들고, 집이 아닌 정원에서 마시는 커피는 전혀 같지 않다. 커피 크레마가 움직이는 것을 보며 나는 미소 짓는다. 웨이트리스에게 고맙다고 말하려는 순간 그녀가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그녀는 어색한 말투로 "아녕하세요"하고 말한다. 타지에서 듣는 반가운 한국말에 그녀와 나 사이에 말문이 트인다.  


잠깐의 대화를 끝났다. 나는 반들반들한 컵의 감촉을 느끼며 아직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입안에 퍼지는 씁쓸하고 진한 맛이 낮아져 있던 내 도파민 레벨을 한껏 끌어올린다. 역시 이 맛이지! 아무리 집에서 커피를 내려마셔도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를 따라가지 못한다.  


모니터 안에 커서가 연신 깜빡인다. 나는 경쾌하게 타자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하얀 도화지에 나만의 단편 소설이 만들어진다. 어떤 이야기의 흐름 없이, 그저 내가 보고 싶은 한 토막의 장면을 적는다. 재미로 시작했던 단편 소설이 스트레스가 되면 그때는 줄거리를 쭈욱 써 내려간다. 클리셰로 범벅이 된 줄거리이지만 왠지 재미있게 읽힌다. 그러면 아무 생산성이 없다고 느껴졌던 하루가 꽤나 괜찮은 하루로 변한다. 손을 뻗어 반쯤 남은 커피를 한 모금 또 마신다.  


문득 아이들의 소리가 들린다. 모니터에 꽂혀 있던 시선이 절로 위로 향한다. 그곳에는 3-4살로 보이는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잘 걷지도 못하지만 어떻게든 공을 잡겠다는 일념 하나로 열심히 움직인다. 실수로 공을 놓쳐서 살짝 먼 곳으로 통통 튀어가는 것을 보며 아이들은 꺄르륵 소리를 내며 웃는다. 공이 굴러가는 모습이 그렇게나 재미있는 걸까? 어른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절로 내 입가도 곡선을 그린다. 아, 아쉽게도 방금 마신 커피가 마지막이었다. 오후 4시. 이제 슬슬 집에 갈 준비를 한다. 퇴근하는 차로 도로가 막힐 시간이다. 아이들은 여전히 신나게 놀고 있다. 나는 느긋하게 노트북을 닫는다. 집에 가는 길에도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커피 말고도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충만으로 가득 찬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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