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야구만화에 대한 안티테제

Nobody Wins, But I! 《원아웃》 - 원제 ONE OUTS

by MLVine
지금 소개드리는 작품은 리디북스(만화e북), 카카오페이지을 통해 만화로 감상하실 수 있고, 라프텔(애니 스트리밍)에서 애니메이션으로 공식적으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야구 좋아하세요?"

이 질문을 그냥 먼저 던져본다. "야구 좋아합니다"든, "치고 달리고, 대체 야구가 뭐가 재밌는지 모르겠어요"든 어떤 답이든 상관없다. 지금부터 내가 추천하는 만화는 야구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야구를 전혀 몰라도 완전히 빠져들 수 있는 작품이니까. 이 만화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만화가 아니다.

야구 만화나 애니를 많이 본 사람이라면 《H2》, 《메이저》, 《터치》, 《다이아몬드 에이스》 같은 작품들을 보며 야구를 사랑하는 청년들의 노력과 열정, 팀원들 간의 우정에 감동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아웃》의 관점에서 보면, 그 따위 감성적인 것은 시쳇말로 강아지에게나 줘버렸다고 하겠다. 표면은 분명 야구 만화인데, 속을 뜯어보면 심리전, 게임이론, 전략, 도박이 뒤섞인 전혀 다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무슨 말인지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직접 써보려 한다.




도박꾼의 프로야구 입단

주인공 토쿠치 토아는 오키나와 뒷골목에서 '원아웃'이라는 내기 야구로 생계를 유지하는 인물이다. 규칙은 단순하다. 아웃 하나를 잡으면 돈을 받고, 안타를 내주면 돈을 낸다. 그렇게 수백 명을 상대로 이겨온 사람.


그가 어쩌다 프로야구팀에 입단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구단주는 엘리트 야구 출신이 아니니 계약금도 제대로 된 조건도 없다고 선언한다. 웬만한 선수라면 도망쳐야 할 상황이지만, 토쿠치는 되레 더 위험한 조건을 제시한다.

"원아웃에 500만 엔을 받겠다. 단, 내가 실점하면 역으로 1점당 5,000만 엔을 지급하지."

- 작 중 토쿠치 토아 -

이 대사 이후로, 당신은 이 만화를 멈출 수 없다.


피도 땀도 눈물도 없는 주인공

스포츠 만화에는 공식이 있다. 주인공은 땀을 흘리고, 좌절하고, 동료와 부딪히며 성장한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감동을 받는다. 수십 년간 검증된 방식이고, 먹히지 않은 적이 없다.


토쿠치는 그 공식을 완전히 무시한다. 그는 노력을 믿지 않는다. 정확히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한계를 믿지 않는다. 피지컬이 뛰어나지도 않고, 구속이 빠르지도 않다. 그럼에도 그는 진다는 개념 자체를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비결은 간단하다. 그는 공이 아니라 심리를 던진다. 타자가 다음에 어떤 공을 기다리는지, 감독이 어떤 작전을 짜는지, 구단주가 어디서 돈을 빼돌리는지. 그걸 전부 읽고, 전부 역이용한다. 상대방이 스스로 무너지도록 판을 짜는 것이다. 온갖 비열한 플레이와 수작질을 거뜬히 뛰어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이 만화의 특징이자 묘미다. 다른 스포츠 작품에서 느껴온 전율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전율을 안겨준다.


야구 없는 야구만화

처음 이 만화를 본 지 거의 2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기억한다. 《원아웃》을 다 읽고 나서 잠깐 멍했던 것 같다. 야구와는 무관하게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왜 저런 선택을 하는지, 저 말 뒤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자꾸 생각하게 됐다. 토쿠치의 눈을 슬쩍 빌려 세상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게 이 만화의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스포츠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결국 인간의 욕망, 두려움, 허영, 계산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 안에서 토쿠치는 다크 히어로처럼 초인적인 통찰로 그 모든 것을 짚어내고 이용하며 독자의 쾌감을 극대화한다.


캐릭터 설정도 명쾌하다. 선악의 구분 따윈 없고, 소수의 캐릭터에게만 집중된 구조다. 무섭도록 냉정하지만 어딘가 쓸쓸하기도 한 토쿠치에게 끌리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아직도 그가 왜 그렇게 사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대리만족만큼은 확실하다.




당시 커뮤니티에서 현실성이 지나치게 떨어진다는 말들도 있었다. 하지만 순수하게 현실성만 따지고 싶다면 애초에 《원아웃》에 올 이유가 없다. 만화를 보면서 현실성을 검증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도 하고. 오히려 전생이나 이세계(異世界) 설정 없이 먹히는 먼치킨물이니, 황당한 스토리보다는 훨씬 수용 가능한 범위라고 본다.

야구를 좋아한다면 토쿠치의 규칙 악용이 실제로 가능한지를 따져가며 읽으면 되고, 야구를 모른다면 악덕 구단주와의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도박 승부라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된다.


특히 이런 사람에게 강력 추천한다. 스포츠 만화의 감동 드라마에 지친 사람. 주인공이 죽어라 노력하는 걸 보기 싫은 사람. 상대가 완전히 좌절하는 순간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 야구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


어찌보면 느슨하게 살고 있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토쿠치의 승부관을 담은 대사 하나를 던지며 마무리한다.

"그게 승부잖아. 너희는 승부란 걸 오해하고 있어. 승부에서 이긴다는 건 힘으로 상대를 뛰어넘는 것도, 행운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야. 걷어차는 것. 타락시키는 것. 넘어진 녀석을 짓밟는 것. 살아남는다는 건 악마가 되는 거야. 결코 아름다운 게 아니야. 오히려 잔혹하지... 그래도 우승을 하고 싶다면 악마가 돼라."

- 작 중 토쿠치 토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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