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의 끝에서 도달한 나만의 언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읽고
우리나라에서 인정받는 이른바 '국민 MC' 중에 강호동이 있다는 것을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모르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강호동의 코미디 방식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차라리 특별한 의견이 없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그가 종종 저명한 위인이나 철학자의 이른바 '명언'이라 불리는 문장들을 방송에서 인용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누군가는 이게 왜 마음에 걸리냐고 되묻기도 한다. (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해 준 아내에게 새삼 고맙다)
이 불편함을 느리지만 섬세하게 함께 짚어주는 책이 바로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였다. 내가 왜 그것을 불편해했는지, 이 책을 공유하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눠볼 기회를 갖고 싶다.
히로바 도이치 교수는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괴테 전문가로 인정받는 독문학자다. 결혼 25주년 기념일에 가족과 함께 찾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그는 홍차 티백 꼬리표에 적힌 문장 하나를 발견한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 Goethe —
평생 괴테만 연구한 남자가 처음 보는 괴테의 말이라니. 그런데 이상하다. 이 문장이 어쩐지 자신이 수십 년간 연구해 온 괴테 철학의 핵심을 한 줄로 요약하는 것 같다. 그는 알 듯 모를 듯 그 문장에 이끌려 티백 꼬리표를 조심스레 떼어 책상 코르크판에 꽂아둔다. 그리고 집요하게 그 문장의 출처 찾기를 시작한다. 괴테 전집을 뒤지고, 동료 학자들에게 수소문하고, 온갖 판본을 조사한다. 하지만 이 문장은 어디에도 없다. 괴테가 정말 한 말일까, 아니면 누군가 지어낸 말일까?
소설은 이 문장을 찾는 과정 속에서 도이치의 아내 아키코, 딸 노리카, 노리카의 남자친구, 제자들의 일상을 잔잔하게 비추며 촘촘히 관계를 엮어간다. 학문과 사랑, 인용과 창작, 타인의 말과 자기 언어 사이를 오가며 각자의 이야기가 조용히 흘러간다. 과연 도이치는 그 문장의 출처를 찾았을까? 그리고 그 과정의 의미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나도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에 쓰여 있는 이른바 명언 옆에 "데카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이름이 붙어 있을 때 도이치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주워 들었거나 책에서 읽은 문장들을 일상에서 편하게 내뱉는 경우는 흔하다. 게다가 명언의 출처를 정확히 알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하지만 도이치는 티백 하나에 쓰여 있는 문장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직접 확인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단순히 진실을 알고자 했다기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괴테라면 충분히 그런 말을 했을 수 있겠다는 묘한 믿음이 마음 한편에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사실 티백 제조사에 먼저 연락해 봤다면 소설의 분량은 반으로 줄었을 텐데)
작중 노리카는 언어 시스템 자체가 인용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는 말 중 순수하게 '내 것'인 말이 있는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SNS에서 문장을 저장하고, 좋은 글귀를 공유하고, 누군가의 말로 내 감정을 대신하는 시대. 인용과 창작의 경계는 어쩌면 아주 모호할지 모른다.
이러한 추적과 숙고 끝에 결국 도이치는 티백에 있던 문장을 괴테의 철학으로 이해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대중에게 소개하는 쾌감에 도달한다.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해서 그 문장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비록 괴테가 한 말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했다면, 그 문장은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이 책을 읽고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미 말해진 것이라도 나의 언어로 다시 말할 때 비로소 진짜가 된다는 역자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그래서 나에게 묻는다. 삶에서 얼마나 다른 사람들의 말을 옮기고 있는지. 그 출처는 알고 있는지. 추적해 보고 그 철학을 이해한 뒤 나의 언어로 다시 말해 진짜로 만들어 내고 있는지.
다시 강호동 이야기로 돌아와 본다. 그의 언행이 불편했던 건, 그가 명언의 출처를 분명히 밝히지도 않고, 그 철학을 깊이 살피지도 않고, 자신만의 언어로 소화하여 전달하지도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강호동의 팬에게는 괜한 미안함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작가의 풍부한 문학적 식견과 인용에 감탄했고, 그래서 더 읽고 싶어진 책이 많아졌다. 특히 괴테의『색채론』은 꼭 읽어 볼 생각이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전개가 느리지만 그 느림은 이 소설에 적합했고, 끊임없이 떡밥을 던지고 긴장감으로 도파민만 자극하는 작품의 홍수 속에서 이런 감성도 나에게는 소중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좋지만, 『보이후드』 같은 영화도 필요하니까.
일본 문학계도 2001년생의 문학과 철학 오타쿠인 무서운 신인에게 감동했기에 아쿠타가와상이라는 영광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소설을 30일 만에 써낸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