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21세기 자본』을 읽고, 근로가 희망이 되길 바라며
저는 일반 근로자의 삶을 시작한 이래로 꾸준히 소득세의 불합리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연봉이 상승하여도 확실하게 삶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그 답답함. 아마 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진 않았나 봅니다. 최근 대한민국 대통령도 유사한 언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 생각과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을 법한 서적을 찾는 중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포함하여 여러 참고자료를 살피며 제 의견을 정리했습니다. 어떤 정책을 만들면 우리 같은 소위 월급쟁이 즉 임금근로자들이 존중받는 조세환경이 만들어질지 고민해 봤습니다.
예를 들어 시작해 보겠습니다. 연봉 1억 원을 받는 직장인 A 씨가 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야근을 하기도 하고, 주말에도 종종 업무를 봅니다. 한편, 10억 원의 금융자산을 가진 B 씨는 그 자산에서 나오는 이자와 배당으로 연 1억 원의 소득을 올립니다.
같은 1억 원입니다. 그런데 누가 더 많은 세금을 낼까요?
이상하게도 직접 노동을 수행한 A 씨입니다. A 씨는 각종 공제를 받더라도 실효세율 25~30%를 부담합니다. 반면 B 씨는 금융소득을 잘 분산하면 14%의 낮은 세율로 세금 문제가 끝납니다. 우리나라 세금 제도가 노동보다 자본에 더 관대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에서 임금근로자 비중이 76.6%가 되는 상황에서 이게 과연 공정한 걸까요?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답을 제시합니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250년간의 경제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간단하지만 무서운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r > g 자본수익률(r)은 경제성장률(g)보다 거의 항상 높다. 즉, 이미 가진 사람의 재산은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불어난다.
이 문장을 쉽게 말하면, 열심히 일해서 월급을 모으는 것으로는 이미 가진 자산으로 투자 수익을 올리는 방식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피케티는 프랑스 학자답게 프랑스 작가 발자크의 19세기 소설『고리오 영감』속 청년 라스티냐크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청년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혼신의 힘으로 공부해서 성공한 변호사가 되는 것, 다른 하나는 부잣집 딸과 결혼하는 것. 당시 프랑스에서는 후자가 경제적으로 훨씬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사회비판과 풍자가 어우러진 소설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이야기가 오늘날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한 세기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영끌'로 집을 산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 부모로부터 자산을 물려받은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는 단순히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세금 제도는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래를 보시면 근로소득과 자본소득에 대한 대우가 얼마나 다른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근로소득세 - 최고 45% (원천징수로 회피 불가, 가장 높은 세율)
법인세 - 최고 24% (근로소득세 대비 절감방안 다수 존재)
금융소득(이자·배당) - 14% (2,000만 원까지 분리과세로 종결)
주식 양도차익 - 비과세 (대주주 외 일반 투자자는 과세 제외)
근로소득자는 최고 45%까지 세금을 내지만, 금융소득은 2,000만 원까지 14%로 끝납니다. 주식으로 큰돈을 벌어도 대주주가 아니면 세금을 내지 않습니다. 일해서 번 돈에는 높은 세금, 자본이 벌어준 돈에는 낮은 세금.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세금 제도의 현실입니다.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자산 상위 10% 가구가 전체 가계 순자산의 46.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거의 절반 수준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은 소득 구성의 변화입니다.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의 비중은 줄어들고, 자산에서 나오는 재산소득의 비중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자산 격차가 소득 격차로, 소득 격차가 다시 자산 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고착화됩니다.
"한국에서 불평등을 인식할 때는 소득보다 자산 효과가 더 크다. 돈을 모아서 집을 살 수 없는 시대에 체감하는 불평등 완화 정도에 한계가 있다." - 정인관 교수 -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자본에 세금을 많이 부과하면 투자가 줄어들지 않을까요?"
피케티는 역사에서 답을 찾습니다. 미국은 20세기 중반, 최고 소득세율이 90%가 넘고 상속세율도 70%를 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바로 미국 경제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중산층이 두터워지던 황금기였습니다. 높은 세금이 경제를 망친다는 건 역사적 근거가 약한 주장이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자본에 관대한 세금 제도가 계속되면 어떻게 될지 예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열심히 일할 동기가 사라집니다. 아무리 일해도 자산 격차를 좁힐 수 없다면, 왜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둘째, 부모의 자산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회가 됩니다. 능력보다 태어난 집안이 중요해지면,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공정한 기회의 제공이라는 가치는 무너집니다.
셋째, 국가 또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립니다. 같은 사회 구성원인데 비슷한 금액의 소득이 발생했지만 누구는 45%를 내고 누구는 14%를 낸다면, 조세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이 발생합니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단계적인 개선이 현실적입니다.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단기적인 방안으로는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을 2,0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낮추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2013년에 4,0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낮춘 전례가 있으니, 추가 조정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렇게 하면 더 많은 금융소득이 다른 소득과 합산되어 공정하게 과세됩니다.
그리고 계속 미뤄지고 있는 금융투자소득세를 예정대로 시행해야 합니다. 주식으로 5,000만 원 넘게 벌면서 세금을 안 내는 건 형평에 맞지 않습니다.
중기적 방안으로는 자본소득에도 소득 규모에 따라 다른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 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액 금융소득자와 대규모 자산가를 똑같이 14%로 과세하는 건 공정하지 않습니다.
상속·증여세도 실효성을 높여야 합니다. 실효성을 높인다는 의미는 단순히 세율을 올리 자는 방향이 아닙니다. 세부적인 조건을 마련하고 각 상속·증여세 사례를 꼼꼼히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하게 상속·증여하는 금액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 아니라 각 납세자별로 정당한 세금을 납부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중복과세, 불평등 과세로 명목 세율이 높기 때문에 오히려 각종 공제와 편법을 더 부추기는 상황을 해소해야 합니다. 상속·증여의 상징성이 세대 간 부의 대물림으로만 고착화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론 피케티가 제안한 것처럼, 일정 규모 이상의 순자산에 매년 세금을 부과하는 종합재산세(부유세)도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자본 유출 등 현실적인 고려가 필요하지만, 불평등이 계속 심화된다면 자본이 집중되는 구조 개선을 위해 언젠가는 논의해야 할 주제입니다.
세금 제도는 단순히 돈을 걷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제도 중 하나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세금 제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일해서 버는 것보다 가진 것으로 버는 게 낫다." 그러한 사회적 인식이 당연해지는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면 빠른 시일 내에 세금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 없이는 불평등의 심화를 막을 수 없다. 이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이며, 시장에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 - 작 중 피케티 -
저는 단순히 땀 흘리는 노동이 자산보다 가치 있고 숭고하다는 가치를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정적 자산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회인 근로 임금에 대한 존중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 태어난 집안보다 본인의 노력이 더 중요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금 제도부터 바꿔야 합니다. 노동에는 좀 더 가볍게, 자본에는 좀 더 공정하게. 그것이 다음 세대를 위한 현재 경제활동을 하고 투표권을 행사하는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