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림》이 품은 카이주의 철학
"자연에 맞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요, 허리케인이 몰아닥치면 피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예거(Jaeger) 안에 있다면, 마침내... 우린 허리케인에 맞설 수 있고, 이길 수 있다."
2013년 기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에서 주인공 롤리가 내뱉는 이 대사는 단순한 의지의 표명이 아니다. 이 한 문장에는 인간이 자연재해 같은 거대한 위협에 맞설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70년간 축적된 일본 카이주(怪獣) 문화의 철학적 근본이 담겨 있다.
《퍼시픽 림》을 단순한 오락 영화로 치부하기 쉽다. 연출과 각본으로 설정된 악을 물리치고 지구를 지키는 거대한 기계들의 이야기니까. 실제로 나 역시 얼마 전까지 이 영화를 《트랜스포머》와 유사한 블록버스터 메카물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회사 동료들과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새벽이란 친구가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왜 퍼시픽 림은 그렇게 거대한 스케일의 메카를 설정했을까? 그리고 왜 사람들은 그 영화를 좋아했을까?"
메카와 애니메이션 덕후인 다른 친구의 답을 빌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거대한 존재에 대한 동경을 갖는 건 당연하고, 퍼시픽 림의 메카 표현력과 섬세함이 마니아들에게 어필했다고 들었어. 나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정말 좋게 봤거든."
하지만 이 답변으로는 진짜 궁금한 점이 해결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트랜스포머》의 메카들이 훨씬 매력적이다. 캐릭터와 컬러가 다양하고, 자동차와 전투기로 변형되며, 속도도 빠르다. 반면 《퍼시픽 림》의 예거들은 상대적으로 느리고 단조로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시픽 림》은 왜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성급하게 답을 찾으려 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며, 이 영화를 제대로 파헤쳐보기로 했다.
델 토로 감독의 인터뷰를 살펴보니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퍼시픽 림》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놀랍게도 일본 카이주(怪獣) 문화의 원조인 1954년작 《고지라》에 도달한다.
《고지라》의 탄생 배경을 이해하면 카이주 문화의 본질이 보인다. 이 영화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비키니섬 핵실험으로 인한 일본 어선 피폭 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몇 년 후에 만들어졌다. 고지라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다. "걸어 다니는 방사능"으로서, 급속한 근대화와 패전의 굴욕,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대한 일본인들의 복합적 트라우마가 투영된 문화적 산물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카이주(怪獣)라는 단어 자체에 있다. "괴이한 짐승"이라는 뜻의 이 용어가 암시하듯, 카이주들은 인간의 이해 범위를 벗어난 존재들이다. 하지만 서구의 몬스터 영화와 달리, 일본의 카이주들은 완전한 악역이 아니었다. 때로는 인류를 보호하고, 때로는 자연의 균형을 되찾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는 일본 문화 특유의 자연관을 반영한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 대립 관계가 아니라 공존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카이주 문화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접한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도 이런 철학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델 토로 감독은 《퍼시픽 림》 속편 구상 과정에서 괴수들이 사실은 수천 년 후 미래의 인류라는 설정을 고려했다고 한다. 생체 외골격 슈트를 입은 채로, 망가진 미래 지구를 떠나 과거의 지구를 테라포밍 하려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설정이 실현되었다면, 지구를 파괴한 현재 인류와 괴수들 사이의 선악 구분이 완전히 흐려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토록 거대한 것들에 매혹되는 걸까? 압도적인 스케일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복합적이다.
첫째는 숭고함에 대한 갈망이다. 거대한 산맥이나 폭포를 마주할 때 느끼는 경외감처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무언가와 조우했을 때의 존재론적 전율이 작용한다. 《퍼시픽 림》이 바다를 주요 무대로 설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류가 태고부터 바다에 대해 느껴온 근원적 공포와 경외감을 활용하여, 그 광활한 바다를 가르며 전진하는 카이주와 예거들의 거대함과 중량감을 극대화한 것이다.
둘째는 일상의 무력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다. 현실에서 우리는 경제 위기, 자연재해, 거대한 사회 시스템 앞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된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스크린 속에서만큼은 인간이 그 거대한 힘을 조종하고 통제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대리만족을 넘어서,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 긍정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퍼시픽 림》이 다른 서구 괴수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핵심은 일본 카이주 문화에 대한 델 토로의 깊이 있는 이해에 있다. 그는 단순히 거대 메카와 괴수의 시각적 스펙터클만 차용한 것이 아니라, 그 문화적 토대까지 존중했다.
이는 용어 선택부터 드러난다. 서구식 표현인 '몬스터'나 '비스트' 대신 '카이주'라는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일본 괴수 문화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행위였다. 엔딩 크레딧에서 《고지라》의 혼다 이시로 감독에게 작품을 헌정한 것 역시 단순한 오마주를 넘어선 진심 어린 경의의 표현이었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제작 방식이다. CG가 주를 이루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델 토로는 예거의 조종석을 실제로 제작해 물을 퍼부으며 촬영했다. 카이주의 일부 장면은 아날로그 특수효과로 구현했다. 이는 일본 특촬 영화의 슈트 액션과 미니어처 세트 전통에 대한 존경을 실천으로 보여준 것이다.
《퍼시픽 림》이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단순히 화려한 CG 때문만이 아니다. 이 영화는 현대인들이 느끼는 무력감에 대한 상징적 해답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 경제 불안정, 팬데믹 같은 통제 불가능한 거대 위협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거가 혼자서는 작동할 수 없다는 설정이다. 두 명의 파일럿이 정신을 연결하는 '드리프트' 시스템은 개인의 영웅주의를 거부한다. 이 점이 이전의 최고 메카 상업영화인 《트랜스포머》와의 결정적 차이점이다.
《트랜스포머》에서는 샘이라는 평범한 주인공이 오토봇들과 만나면서 성장하고, 결국 개인의 용기와 선택으로 세계를 구원한다. 전형적인 서구식 영웅 서사의 구조다. 반면 《퍼시픽 림》은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드리프트 시스템을 통해 두 사람이 기억과 감정을 완전히 공유해야만 예거가 움직인다. 이는 단순한 팀워크를 넘어선, 타인과의 완전한 공감과 연대를 요구하는 시스템이다.
더 나아가 《퍼시픽 림》은 국적도, 문화적 배경도, 성별도 다른 사람들이 마음을 합쳐야만 거대한 위협에 맞설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현실의 글로벌 위기들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국경과 이념을 초월한 협력만이 인류가 나아갈 길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결국 《퍼시픽 림》은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선다. 이 작품은 일본 카이주 문화가 70년간 탐구해 온 "거대한 것에 맞서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문화적 성취다. 델 토로의 깊은 문화적 이해와 존경을 바탕으로 탄생한 이 영화는, 서구와 동양의 상상력이 만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허리케인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믿음. 이는 허황한 희망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신뢰의 표현이다. 개별적으로는 작고 무력한 우리지만, 함께라면 어떤 거대한 위협도 극복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카이주 문화가, 그리고 《퍼시픽 림》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