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도 눈 감은 듯 바라보다

by 서연

“네(딸)가 나(어머니)를 가까이서 지켜본 만큼이나 나도 너를 가까이서 지켜 봐왔다.

그게 어머니들이 하는 일이지.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늘 지켜본단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시선이 강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보지 않는 척하는 거야.”

-데버라 리비, ⌜핫밀크⌟-


한창 분주하게 일을 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큰아들이었다. 어지간한 일로는 연락하지 않는 녀석인데, ‘무슨 일일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엄마.”

“응. 무슨 일이야?”

아이는 내 목소리에 묻어있는 긴장을 눈치챘는지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니라고 안심시킨다.

“엄마, 오늘 수능 예비 소집일인데.”

목소리는 잠겨있고, 말투는 살얼음을 걷듯 느리고 조심스럽다.

“나 있잖아···, 이번 수능 안 보면 안 될까?”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할 말을 찾으며 잠시 숨을 고른다.

“어,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이번에 수능을 보는 게 의미가 없는 거야?”

“응, 엄마. 미안해. 공부도 안 했고···.”

“대학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 오늘 신문 기사 보니 대학생들이 AI로 과제 제출해서 F학점 받았대. 대학이란 곳에서 뭘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대학을 안 가겠다는 건 아니고···.”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내 목소리에는 오히려 평소보다 힘이 더 실려있다.


가끔 아이 방을 열면 긴 앞머리가 흘러내리지 않게 머리띠를 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모의고사 문제지를 푸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아이는 모든 것을 놔버린 사람처럼 무기력해 보였다. 다시 밤낮이 바뀌었고,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 책상 가운데에 있던 책은 옆으로 치워져 있고, 컴퓨터 앞에서 게임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했다. 가끔은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연락하는지 엄지손가락이 바삐 움직였다. 물어보니 중학교 때부터 즐겨 했던 마피아 게임을 한다고 했다. 사람들끼리 팀을 나누고 채팅하면서 서로를 속이며 상대 팀을 제거하는 심리 추리 게임이다. 아이는 중학교 때부터 마피아 게임을 하며 고등학생, 대학생 형들과 친해졌고, 지금까지도 연락한다고 했다.


그즈음 아이는 이상하리만큼 예민하게 굴었다. 막내의 잘못된 행동에 평소 같으면 차분하게 말했을 텐데, 비아냥거리며 막말을 했다. 참다못한 나는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냐고, 동생에게 왜 그렇게 함부로 말하냐고. 아이는 지지 않고 대들었다. 나도 굽히지 않았다. 왜 엄마한테까지 소리를 지르냐고, 엄마가 만만해 보이냐고. 아이는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한테 소리 지른 건 잘못이라고. 내가 동생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동생이 잘못했는데도 엄마가 감싸기만 하는 것 같아 너무 답답해서 그랬다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며칠이 지난 후 아이 방에 노크했다. 무기력한 모습을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무슨 일 있는 거야? 공부는 왜 안 해?”

“나도 모르겠어. 내가 왜 공부를 안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올해가 기회잖아. 내년에 또 어떻게 하려고?”

“엄마, 내가 스트레스가 심한가 봐. 정말 미치겠어. 나, 너무 외로워. 나, 사람이 너무 고파. 사람들하고 대화하고 싶어.”

아이의 외롭다는 말에,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 나, 내년에 독립할게. 알바도 하고 공부도 하고 사회생활도 해보고 싶어.”

“엄마랑 같이 살 때 공부하면 편할 텐데. 혼자 살면서 공부하기 힘들 거야, 알잖아. 군대에서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결국 못했잖아.”

“알아. 그래도 독립하는 게 낫겠어.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엄마한테 정말 미안한데, 엄마! 나 좀 믿어줘. 잘할 수 있어, 엄마.”

내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아들과 나 사이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흐를 뿐이었다. 한참 뒤에 일어나 아이에게 다가갔다. 나는 의자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아이의 어깨를 감쌌다.

“엄마가 미안하다. 네가 힘들 때 엄마가 힘이 돼줘야 하는데, 오히려 힘 빠지게 했네.”

눈물이 쏟아지려 했다.

“잘될 거야. 그까짓 1년? 인생을 길게 보면 1년은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괜찮아.”

아이의 어깨를 다독거리고,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아이가 외롭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5월, 한창 코로나가 급증할 시기에 아이는 자퇴를 했다. 친구들과의 추억이라곤 초등학교, 중학교 학창 시절뿐이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친구들과 만나서 놀고 여자 친구도 사귀고 싶었을 텐데. 이제는 친구들 대부분은 군에 입대했고 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 그래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마피아 게임에 다시 빠졌던 거다.

시골에 사는 우리는 시내에 나가려면 한 시간에 한 번씩 오는 버스를 타야 한다. 알바를 해도 시내에서 해야 하고, 공부를 하려고 해도 시내 도서관에서 해야 한다. 아이는 자신이 벌써 22살이라며 언제까지 부모 곁에서 살 순 없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독립을 결정한 것이다. 군에서 모아둔 천만 원으로 방을 얻고, 평일에는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주말에는 알바하고, 틈틈이 헬스장도 다니겠다고 한다.

나의 바람대로 올해 공부해서 내년에 대학을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이는 1년 더 해보려고 한다. 자퇴하기로 마음먹을 때부터 지금 독립하겠다는 결정까지, 아이는 자신이 선택한 길로 가고 있다. 직접 경험해보고 깨달아야 하는 아이, 어떤 말로 설득해도 자기 소신대로 하는 아이다. 이런 아이도 엄마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나보다. 그러니 엄마에게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던 것이다.


그동안 아이 얼굴을 볼 때면 “요즘 공부 잘돼?”, “좀 할 만해?”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그때마다 아이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어떤 의미였을까? 내가 관심의 표현이라고 여겼던 말과 눈빛이 아이에게 부담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영국 작가 데버라 리비는 소설 ⌜핫밀크⌟를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인터뷰를 통해 말한다. “카페에 앉아 우유 거품이 이는 모습을 바라보았어요. 컵을 쥔 사람과 컵에 쓰인 글자를 바라보았죠. 컵의 맨 아래, 작게 적힌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들었어요. ‘뜨거운 것이 담겨 있음’ 핫밀크는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아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의 온도가 적당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가끔은 부모의 시선이 너무 뜨거워서 아이가 데일 정도다. 그만큼 강력하다. 자식은 부모의 말, 눈빛, 태도에서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는 눈 떠 있어도 눈 감은 듯 바라보고 싶다. 자식을 지켜보면서 늘 마음 졸이는 일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부모의 숙명인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엄마이기에, 알아도 모르는 척할 것이고, 뒤에서 말없이 응원할 것이며 늦은 밤 홀로 앉아 기도할 것이다. 이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2025.11.12. 수능 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