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by 서연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노래 <달리기> 가사의 일부분-


열심히 한다. 아니, 정확히는 열심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가슴 한편이 시큰해지며, 잘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방에만 주로 있으니, 얼굴은 가끔 볼 뿐이다. 방에서 한숨과 함께 걸어 나와 정수기의 냉수 버튼을 누르면서 눈을 마주치고 잠깐, 배가 고픈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으면서 뒤돌아 내 얼굴을 보고 잠깐. 방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할 때 내가 묻는다.

“배고파? 뭐 해줄까?”

“아니, 괜찮아, 내가 알아서 먹을게.”

그 말을 듣는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다.

큰아들. 모든 게 서툴고 처음이라 엄마라는 이름이 낯설고 어색했던 그 시절. 처음으로 낳았고 처음으로 키웠던 첫아이. 아이는 자라 벌써 22살이다. 고등학교 자퇴 후 이유도 알 수 없는 피부병으로 2년 가까이 두문불출했다. 그때 나는 어떻게 하면 피부가 나을 수 있을지, 이렇게 집에만 있어도 괜찮은지, 성인이 되어서 사회생활은 잘할 수 있을지, 온갖 불안에 휩싸여 아이에게 자주 화를 냈었다. 지금도 아이는 엄마가 그때 왜 화를 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아이였을 텐데 나는 아이의 고통보다는 나의 불안이 먼저 떠올라 왜 야채를 먹지 않느냐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낫는다고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나는 걱정과 불안이 많다.

결국 아이의 피부병이 나아진 것은 식습관도 아니고 생활 습관도 아닌 아이의 참을성이었다. 간지러워도 절대 긁지 않으면 되었다. 가만히 내버려두니 아이의 몸이 알아서 치유한 것이다. 긁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참았을 거다. 그렇게 아이는 참을성이 많다.

아이는 20살 되던 해 입대했다. 군에서도 힘든 일이 많았을 텐데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엄마인 나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잘 지내겠거니 생각하고 연락하지 않았다. 아이는 군에서 독감이 걸려 일주일 넘게 아팠을 때도, 두 번의 접촉 사고로 운전병을 그만두고 풀을 깍는 예초병이 되었을 때도 아무 말이 없었다. 모든 일이 지난 후, 덤덤하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그랬노라고···, 그래서 많이 아팠노라고. 아이는 늘 그런 식이다.

작년 겨울에 전역을 했다. 군대에서 공부한다고 자기 딴에는 노력을 했겠지만, 야간 당직 일에 새벽 5시에 일어나 풀을 깍는 일에 공부까지 한다는 것은 무리였을 테지. 아이는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했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르다며 열심히 해보고 싶다고 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아침 7시에 도서관 가서 밤 10시에 집에 오기를 석 달째, 슬슬 지치고 힘들었는지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지고, 안 가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나가서 밥 먹는 게 곤욕이라는 거다. 편의점의 삼각김밥도 질리고, 식당까지 오며 가며 먹는 것도 시간이 너무 든다는 게 이유다.

그즈음 설상가상으로 아이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누워서 자려고 눈을 감으면 심장이 너무 크고 빠르게 뛴다며 밤에 잠들기가 어렵다고 했다. 새벽녘에서야 겨우 잠이 든다고 했다. 예전처럼 밤낮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부턴가 아이의 방에서 컴퓨터 타자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아이는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다 큰 성인인 아들에게 잔소리하는 게 싫어서 후회하지 않겠냐며 돌려 물었다. 아이는 해야지, 할거야라는 말로 내 입을 막았다. 3개월가량 지났을까, 시간이 한참 흘렀다. 아이가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몇 개월 놀았던 것을 후회하면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말하는 아이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움이 묻어났다.

불안과 걱정 덕분에 열심히 하는 것 같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잡아서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수능이란 시험이 몇 달 공부한다고 되는 시험도 아닌데···.’ 라며 엄마인 나는 또 걱정을 한다. 짐짓 아무렇지 않게 “엄마는 괜찮아, 네가 어느 대학에 가도 상관없어”라는 말을 하지만, 그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나의 걱정을 줄이기 위한 말. 아이는 이런 말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끝까지 해볼 거라고. 자신을 못 믿는 것처럼 보였는지 퉁명스럽다. 자기를 위로 해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는 아나보다.

요즘은 아이에게 “그래, 해보자. 그까짓 것! 죽을 만큼 하면 안 될 게 뭐 있겠어?”라고 말한다. 이 말도 결국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말뿐이라는 걸 나는 안다. 무슨 말을 해야 아이에게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되는지 모르지만, 어느 날 우연히 듣게 되었던 달리기라는 노랫말이 마음 깊은 곳에서 레코드플레이어를 켜놓은 듯 계속 맴돈다.

지겨운 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 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 설 순 없으니,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모든 일이 지난 후 덤덤하게 그랬노라고···, 그래서 이 노래를 선물하고 싶었노라고 큰아들에게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