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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꿈꾸는 할머니

손주와 스키를!

by 바다나무

새해 첫날이다.

해맞이는 가지 못하더라도 새해 아침은 경건하게(?) 맞이하여야 할 듯싶다.

몇 년 전 삼천포로 해맞이를 갔다가 밀리는 인파에 해돋이는 구경도 못하고 고생만 한 기억이 있어 올해는 가까운 산성으로 등산을 가기로 하였다.


그래도 명색이 이름 있는 날이니 아침은 가족끼리 얼굴을 맞대고 자리를 함께 한다.

평상시에는 빵과 우유로 아침이라는 이름을 대신했는데 오늘은 왠지 따뜻한 국물이 있는 떡국은 한 그릇 먹어야 될 것 같다. 가족들이 일 년 동안 추위에 떨거나 배를 곯지 않기를 바라는 내 나름대로의 마음속 축원이리라.

산성에는 아이들과, 또는 부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들이 많았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아 주변의 다랑이 논도, 습지식물이 자라던 연못도 추위에 꽁꽁 얼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플라스틱 썰매나 비료포대로 썰매를 타고 있다. 젊은 남녀가 꽤나 경사가 심한 논둑에서 논바닥으로 썰매를 타고 내려오며 괴성을 지르기에 잠시 발길이 멈췄다. 다소 위험해 보이기는 했지만 무척 신나고 재밌어 보인다.


얼마 전 크리스마스 날 준이를(손주) 데리고 썰매를 타러 갔었다. 외곽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을 듯싶어 산에 있는 카페를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찾아갔다. 고즈넉한 산속에 자리한 카페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눈들이 포근한 이불처럼 드리워져 있다.


준이는(손주) 처음으로 타보는 썰매에 겁을 먹더니 이내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른다.

할아버지는 루돌프사슴이 되어 열심히 썰매를 끌어준다. 우리 준이에게는 “할빠”가 최고다.

내가 아무리 귀한 것을 가져다주어도 모든 좋은 것, 맛있는 것의 제공자는 “할빠”로 기억한다.

지극정성을 다해도 늘 2등인 “할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서운하지 않은 걸 보면 꽤나 속절없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손주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머무는데 남편은 느닷없이 “3-4년 정도 있으면 준이는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신은 그때까지 괜찮겠어?”라고 물으며 나를 쳐다본다.

“글쎄,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한 번은 타야 하지 않을까? 지금부터 건강관리만 잘하면 서역기행 쪽이 완만하니 그쪽으로 내려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하고 다소 자신 없는 대답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남편은 몇 년 전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고관절 수술을 한 다리와 한 살씩 나이 먹어 가는 내가 신경 쓰이나 보다.




35년 전 신혼 초에 학교에 근무하던 남편이 학생들과 선생님 몇 분과 함께 스키장으로 3박 4일 청소년 활동을 간다고 하였다.

방학이라 심심하던 차에 나도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당시만 해도 스키는 부유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할 만큼 대중적이지 않은 스포츠라 스키장을 구경해 보고 싶었다.

하얀 설원에서 펼쳐지는 알록달록한 옷차림의 스키어들의 모습은 내게 어느 무도회장을 방불케 했다. 상급코스에서 점핑을 해서 질주하는 모습들은 사람의 영역이 아닌 축지법을 쓰는 신들의 영역이었다.


무서움과 아찔함을 느끼며 초보 강습생인 우리팀은 최대한 저 밑 구석의 평지 같은 바탈길에서 게걸음을 배우고 넘어지면 일어나는 연습을 하였다.

나는 처음에는 임신 중이라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눈밭을 휘젓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스키를 못 탈 것 같아 남편을 졸랐다.

의사가 지금은 안정기라 하니 조금만 조심하면 초급코스에서 타는 건 가능할 듯싶었다. 무모한 도전이긴 하지만 스키를 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조심스레 움직여 보니 타는 건 가능했지만 옆으로 넘어지면 일어나는 게 문제였다. 배가 불러 누군가 잡아 주어야만 일어날 수가 있었다.

결국 나는 스키화를 신고 폼만 잡은 채 더 이상의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겁도 없고 철도 없었다. 아찔하다.


3일간의 강습으로 학생들과 같이 온 선생님들은 상급코스까지 타게 되었다. 리프트를 타고 손을 흔들며 올라가는 그들의 모습은 승전고를 울리는 개선장군 처럼 당당해 보였다.

애써 부러움을 삼키고 있는데 멀리서 하얀 눈 위를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사람들 속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스키를 타는 손주를 발견하였다. 썩 잘 타는 스키 실력은 아니지만 구색을 갖추어 멋지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조그마한 손주를 가운데 두고 조심스레 내려오는 모습이 너무 정겨워 보였다.

내 기억으로는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듯했다.


귀엽고 앙징맞은 손주의 모습과 모자 속에 희끗희끗한 머릿발을 날리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은 내게 너무 인상적이었고 신선한 충격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급기야는 우리도 언젠가 손주가 생기면 꼭 한번만

이라도 스키장에 오자고 남편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로도 우리는 가끔씩 스키를 타러 다녔다. 잘은 못 타지만 실력에 맞는 코스를 선택하여 겨울을 즐기곤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흥미도, 열정도 줄고 몸도 젊은 날 같지 않아 다른 스포츠로 옮기면서 스키는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던 중 농막에서 생활하다가 덕유산 정상에 하얀 불빛이 하늘과 닿아 천지를 환하게 비추는 야간

스키장을 마주하게 되었다.

갑자기 그 옛날의 기억이 되살아나 마음이 설레었다. 이제는 우리도 손주가 생겨 그 꿈을 실현 할 수 있는 날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과연 3~4년 후에 나는 스키를 탈 수 있을까?

몸이 기억하고 있다 하니 최소한 초급 코스에서라도 손주와 줄 맞추고 내려올 수 있을까?

나의 버킷리스트는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내 건강이 더 이상 노화되지 않고 지금의 여기에서 머물러 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손주와 손잡고 산속을 거닐며 이 꽃, 저 꽃!, 이 나무, 저 나무!, 이 새, 저 새! 이름을 불러가며 이야기 꽃을 피우기 위해 숲해설가 자격증을 따고,

설원에서 손주와 축제의 마당을 펼치고 싶어 하는 이 할머니를 훗날 우리 준이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까?

설령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주책스런 할머니라 할지라도 그런 꿈을 꿀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준이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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