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하프타임

앉은자리에서 높이,멀리!

by 바다나무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나는 지금 하프타임 중이다. 어차피 맞이할 인생 후반전이라면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고 직장생활을 마무리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경제적으로 자립해 조기에 은퇴하는 파이어족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자유로운 삶을 원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넉넉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나를 지탱할 수는 있을 것 같아 자유로운 인생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름으로 내 인생의 하프타임을 올해와 내년, 두 해로 정했다.


함께 퇴직하겠다는 남편을 만류하고 혼자 또 다른 세상 밖으로 나왔다. 올해는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나를 위한 “나다움”을 찾아가는 시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내년은 남편과 같이 “둘이 함께”, 때로는 “둘이 따로” 보내는 시간을 마련하려고 한다. 작전타임을 잘 짜서 적정한 부부관계 속에서 인생 2막을 보람있게 살고 싶다. 퇴직하기 전 은퇴교육도, 선배들의 조언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실전이다. 늘 함께하며 남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였기에 홀로 서는 연습이 선행되어야 했다. 남편은 이 나이에도 우물가에 내어놓은 듯 뭔가 불안한가 보다. 우선은 ‘나다움’ 찾기가 필요했다.


지금까지는 내 의지보다는 흐르는 삶에 기대어 그냥 살았다. 열심히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뜻하지 않은 성과들도 나를 뒷받침해 주었다. 그러나 정녕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한지? 생각해보니 미지수였다. 이제는 인생의 변곡점에서 나침반을 어떻게 돌려놓아야 할지 밑그림이 필요했다. 최소한 인생 후반전은 스스로에게만큼은 멋져 보이고 인정받고 싶었다.


인생 1막을 정리하고 인생 2막을 위해 잘 짜인 작전으로 후반전을 멋지게 살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다.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한번 살다가는 인생을 의미 있는 삶으로 채우고 싶다. 좀 더 성숙해지고 이름다운 삶으로, 최소한 뒤늦은 후회가 주는 자괴감은 맛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다소 설레는 마음과 기대로 하루하루 오늘을 살고 있다.


퇴직 후 옷장 정리를 했다. 무수히 많은 옷을 사고 버렸지만, 여전히 옷장 안은 숨 쉴 틈 없이 꽉 차 있다.

지인들에게 나눔 할 옷과 쓰레기장으로 폐기할 옷들로 분류했다. 그리고 끝부분에 레이스가 달린 옷들은 여유 있는 날 재봉질을 하여 예쁜 커튼이나 식탁보를 만들기 위해 따로 보관해 두었다. 둘러보니 곳곳에 참 많은 물건이 쌓여 있다. 때론 보이는 곳에, 때론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불필요한 물건들, 어디 물건뿐이겠는가? 내 마음에도 얼마나 많은 불편한 생각들을 묻어 두고 살았던가?


얼마 전 친구가 먼저 무언가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표현한 적이 있었다. 이야기가 나온 터라 나도 오랫동안 마음 저 밑에 담고 있던 서운한 속내를 이야기했다. 지금까지는 그냥 ‘나 혼자 불편하고 말아야지’ 하고 애써 참았다. 아니 어쩌면 이야기하는 자체가 쪼잔해 보이면서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애써 누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퇴직을 하면서 이대로라면 그 친구에게 다시는 연락을 안 할 것 같아 말 나온 김에 나도 하게 되었다.


우린 둘 다 긴 설명이나 이해를 위해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구나!”라는 말로 서로를 인정했다. 더 이상의 어떤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나서는 “그래도 우리는 그 옛날의 그냥 친구야!”라는 말로 서운한 마음의 매듭을 풀었다. 결국, 오랜 기간 쌓아 온 우정 전선에 이상 없음을 서로에게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마음 한 자락 남아 있는 불편함도 덜어내었다.


인생 후반전은 불필요하고 불편한 것들은 조금씩 비워내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시간이 가면서 하나씩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도 지워져 간다. 때론 짓누르고 있던 무거움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때는 성취감에 가슴 뿌듯하기도 하다. 새로운 루틴도 만든다. 하루에 최소한 책을 몇 쪽이라도 읽으려 한다. 잘못된 부분은 고치려고도 한다.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위하여 숨이 찰 때까지 몸을 불태우기도 한다.


집도 살다가 오래되면 리모델링한다. 우리 인생도 한 번쯤 새롭게 리모델링 할 때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내 인생의 하프타임은 20년, 30년 후에 오늘을 후회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오늘도 ‘나다움’ 찾기 행군은 계속된다. 내년에는 남편과 둘이 손잡고 제주도 올레길을 걸으며 하프타임을 보내고 있겠지? 바쁜 걸음으로 헬스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우선은 건강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