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살이

친구의 출판기념회!

by 바다나무

친구에게 초대를 받았다.

가을이 들어선 마당에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친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골의 마당 정원에서 남편의 출판기념회 및 가을음악회를 열었다.

시골살이를 하는 그들 부부의 삶을 책으로 발간하면서 지인들을 모시고 소박한 잔치를 열었다. 거기에 남편의 특기인 노래까지 곁들여 음악회까지 열었으니 내겐 얼마나 멋진 가을 나들이인가?

잔디 위에 비치는 가을 햇살이 참으로 정겹다.

마당 가에 서 있는 주황색 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가을의 정취를 한껏 더해준다. 마당 초입에는 가을꽃과 열매들로 예쁘게 꾸며진 다과상이 여주인장의 센스와 넉넉함을 보여준다. 그 옆으로 마당과 연결된 밭에는 코스모스가 가는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하늘거리는 가냘픔이 군락을 이뤄 다소 웅장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곳에 봄에는 청보리가 피었다 하니 그 푸르름 또한 얼마나 장관이었을까 상상을 해 본다.

식전이라 미리 온 연주가들은 리허설을 하고 있다. 주인 내외는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남편과 나는 꽃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차 한잔을 들고 마당 정원을 이곳저곳 둘러보았다. 아기자기한 소품이며 다양한 꽃들이 어느 하나 소홀함 없이 친구의 손길이 닿았음이 느껴졌다. 어쩌면 중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로망을 친구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 속에서 실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은사님이 퇴임을 하면서 몇몇 친구들이 모였다. 나 역시 직장생활을 마치면서 고마운 마음에 조그만 선물을 준비해 참석하였다. 그곳에서 친구와 대학 졸업한 지 40년 만에 해후를 하였다.

조그만 몸짓에 생글생글 웃는 친구는 2번이었고, 나는 그 뒷번호인 3번이었다. 그룹 토의나 조별과제를 할 때는 늘 같이 하였다. 내 기억에 친구는 손재주가 많아 만들기를 잘했던 것 같다. 한동안 친하게 지내다가 지방에서 올라와 기숙사 생활을 하는 나는 정해진 통금시간과 엄격한 규율 때문에 외부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더구나 주말마다 고향 집을 가기가 바빠 자연히 소원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20대의 젊음은 어디로 가고 다소 희끗희끗한 머리와 펑퍼짐한 옷차림에서 서로 간의 세월의 흔적을 느꼈다. 친구는 그 옛날의 모습을 잃지 않고 여낙낙한 중년의 여인으로 멋지게 살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쓴 책에는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존중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이 사진과 함께 잘 나타나 있는 책이었다.

행복이란 무얼까?

귓전에 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잠시 묵상해 보았다. 행복은 “일상이 이상의 기준을 충족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 일상 속에 있는 것이다”라고. 단지 그 기준을 내가 정할 것인지, 아니면 남이 정한 기준에 따를 것인지가 중요 관건인 것이다. 며칠 전 지인의 결혼식이 생각났다.

휘황한 샹들리에 아래 순백의 신랑·신부가 성혼선언문을 낭독했다. 두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서로 간에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며 조화롭게 살겠노라고 조용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다짐했다. 참 의義로와 보였다.

우리들도 분명 결혼할 때는 이렇게 약속했고 화려하게 출발했었는데... 살아오면서 뜻하지 않게 남이 만든 틀 안에 서로를 가두고 비교하기도 했다. 아흔아홉 가지의 장점보다는 한 가지의 단점에 상대방을 단정해 버린 적도 있었다. 아주 사소한 것들을 다름이 아니라 틀림으로 받아들여 오해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기억의 사슬에 묶여있는 동안 무대에서는 가곡에서 통기타 음악을 넘어 팝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옆에 앉은 남편이 열심히 손뼉 치며 호응한다. 모처럼 젊은 날로 소환되어 간 듯 즐거워 보인다. 그 모습에서 중년의 행복감과 평온함이 엿보인다. 아니 이곳에 모인 모두가 행복이 전파된 듯 즐거워 보인다. 들려오는 노래처럼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다.

음악과 분위기에 한껏 취했을 무렵 머리 위에서 커다란 감나무 잎이 떨어져 무릎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빳빳한 잎이 참 예쁘게 단풍이 들었다. 올려다보니 잎이 떨어진 덕분에 주황색 감의 존재가 더욱더 선연히 드러났다. 열매가 풍성하고 아름답다.

그 가지 사이로 가을 햇살이 비집고 들어온다. 눈이 부시다. 어쩌면 친구는 익은 감을 일부러 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연으로 돌려주고픈 넉넉한 마음에서 말이다. 왠지 이 친구라면 능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있는 그대로에서 발견하는 것이라 했다.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찾으면 보인다고 했다. 오늘은 이들 부부에게서 행복을 배워간다. 그리고 친구의 행복 살이 위에 살포시 내 행복살이를 얹어본다. 또 다른 누군가가 내 행복 살이 위에 더해지길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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